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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길 위에 길

텔레파시. 나는 믿는다. 살아가면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어쩌다 봐도 늘 보고 살아온 사람 같은 감정의 전이를 느끼는 사람들. 그런 다정다감한 친구가 내게 한둘 있다. 따뜻한 기운이다.

전날 남편과 그 친구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까운 날 찾아가자고. 그리고 바로 다음날 그의 소식이 카톡에 올라왔다. 경쾌한 텔레파시였다. '중견화가 조성모 화백 마라톤 화제.' 멋진 그가 또 한 번 일을 저지른 거다. 기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니 마음은 세월 따라 그를 아니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났던 미술박람회로 기억을 따라 올라간다.

감정의 핵폭탄이란 별명이 있는 내게 어울리게도 그저 듣기만 해도 속수무책 눈물이 나는 단어들이 있다. 가령 골목길 뒷모습 창 바람 기찻길 빗소리 등 이런 모든 단어들은 감정의 파고로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저마다 사연을 하얀 손수건에 깨알처럼 적어 들고 풀어헤친 네거티브 필름을 들고 헤진 외투차림으로 내 앞에 선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만나는 듯하다. 특히 길이란 주제의 노래나 그림에 난 특히 약하다. 길은 내 앞에 펼쳐진 인생처럼 늘 난감한 주제다.



쭉 뻗은 신작로나 구불구불 산등성 길이나 덕지덕지 사연이 붙어있는 전봇대 뒤에 숨어 있는 골목길이나 모든 길은 아련하다. 미지의 막막함 선택을 재촉하는 갈림길 가지 못한 길의 엇갈린 숨막힘 마지막 내디딘 발길의 불확신의 미진한 여운. 길은 그렇게 내 심장에 못을 박는 아픔이 전해온다.

몇 해 전 독창적이고 광대한 미술작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뉴욕미술박람회 아트엑스포에서 지인의 친구 작품 전시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앤디 워홀 피터 막스 같은 세계적인 거장과 함께 수많은 작가를 배출한 박람회에 한인작가의 출품은 자랑이었다. 덩달아 가슴이 뛰는 축제였다.

입구를 들어설 때만 해도 내 가슴을 뒤흔들 한 작품을 만날 거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었다. 올려다 본 화폭 위로 기하학적 패턴 위에 충격적인 빨강색의 길이 시선을 빨아들였다. 길의 여백을 따라 우뚝 선 표지판 고층빌딩 산 하늘 달 나무가 어우러져 있었다.

그림 따라가는 내 눈에 서서히 'L.O.V.E'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만 입을 손으로 가져가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을 토해냈다. 막연히 길인 줄 알았는데 그 길을 이어가니 사랑이란 글이 숨어 있었던 것이었다.

정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시흥에 삶의 본질까지도 화폭에 담아낸 작품 앞에 나는 왠지 숙연해졌다. 헌신적인 부모 자식사랑 인간애가 묻어나는 사람과 사람의 사랑 애달픔의 남녀간 사랑 그렇다. 우리의 생은 사랑의 보랏빛 꿈을 찾아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는 길 위에 여정이 아닐까.

많은 미술평론가의 인간과 자연 이미지를 시각적인 효과를 잘 나타내고 있다는 호평 이전에 삶의 연대기를 궁극적 사랑으로 펼쳐내어 끌어올린 작가의 주제의 심미안에 나는 심취해 버렸다.

그날 차를 마시며 우리는 예술과 인생의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무엇보다 아들 딸에게 자상한 아빠 부인에게 성실한 남편으로 활동의 열망을 가슴에 잠재우고 택시 운전기사로 생계를 꾸려온 가장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그의 체험담에 고개가 숙여졌다. 몇 해 전 "그림이 당신에게 뭐야?"라고 묻던 내게 "발악이지"라고 말하던 그의 불타는 예술의 혼과 열정과 현실 앞에 그만 침묵하던 우리의 대화를 난 선명히 기억한다.

이제 아이들 다 기르고 홀가분하게 부인과 깊은 산속의 어느 마을에 터 잡고 오직 작품에만 심혈을 기울이는 그를 응원한다.

'조성모 화가 마라톤 완주.' 26.2마일 길의 여정. 생의 축소판 마라톤 몸에 전진이란 엔진통을 달고 돌진하며 빨강.노랑.파랑 물감을 풀어 폭풍 후에도 씻겨 내리지 않는 삶 안에 'L.O.V.E' 사랑을 그려내는 그대. 톡톡 두드리는 카톡 수신. 친구야! 축하해요. 작품으로 몸으로 감동을 토해내는 열정적인 삶 그대는 정말 위대한 길 위에 길을 내고 있어요!



김애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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