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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다시 추수감사절을 맞으며

김완신/논설실장

19세기 뉴잉글랜드 지방에 살았던 새라 조세파 헤일은 작가이면서 잡지 편집장으로 활동했던 여성이었다. 1822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서 5명의 자녀들을 혼자 키우며 살았다.

그녀에게는 소망이 있었다. 헤일은 12대에서 15대까지 대통령들에게 간절한 소망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4명의 대통령들에게 요청했으나 이뤄지지 않던 꿈은 16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에 이르러 실현된다. 바로 추수감사절을 연방공휴일로 지정해 전국적으로 기념하자는 그녀의 소망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1620년대 초 청교도들에 의해 시작된 추수감사절은 워싱턴 초대 대통령 재임시 국경일로 지정됐지만 3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영국 황실의 관행이라는 이유로 폐지시켰다. 그후 추수감사절은 주별로 기념돼 오다가 남북전쟁 중이었던 1863년 링컨 대통령에 의해 최초로 전국의 모든 주에 적용되는 국경일로 선포됐다.

이날이 국경일로 정해지기까지 40여년간 수많은 편지를 보내고 여론을 확산시켰던 헤일은 이후 '추수감사절의 어머니(The Mother of Thanksgiving)'로 불려졌다. 뉴잉글랜드 지역에 국한된 기념일이던 추사감사절은 이때부터 남부주까지 확대되면서 미국의 대표적인 명절이 됐다.



'한 해가 끝나가는 지금, 넓은 들판과 푸른 하늘에는 축복이 가득 차 있습니다. 수확의 기쁨을 내린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이 땅에 사는 모든 국민들, 바다를 떠 다니는 선원들, 타국을 여행하는 미국민 모두가 11월의 마지막 주(후에 넷째주로 변경)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경건하게 기리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전쟁 중 사망한 병사의 부인들, 고아, 그리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링컨 대통령이 추수감사절 제정에 서명하면서 발표한 선언문의 일부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여러 시련을 겪었지만 가장 힘든 시기는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처음 정착했을 때와 남북전쟁 때였다. 신대륙을 찾았던 청교도들은 낯선 땅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떨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다. 남북전쟁은 남과 북이 갈라져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장에서 사려졌던 비운의 시기였다.

초기 정착의 험난한 시기와 암울했던 전시 상황에서, 실의와 좌절이 계속됐지만 감사의 마음은 현실의 어려움을 견디게 하는 힘이었다.

링컨의 추수감사절 선포는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통합하고 가족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우면서 미국을 지탱하는 가장 고귀한 정신이 됐다.

28일은 추수감사절이다. 워싱턴 생일과 독립기념일에 의해 미국에서 세번째로 전국 단위의 국경일로 지정된 날이다. 단순한 공휴일을 넘어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시기다.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이고 한 해를 보내는 감사의 마음도 나눈다.

감사는 먼 곳에 있지 않고 대단한 것에서 찾는 것도 아니다. 작은 감사에 만족하지 못하면 감사는 어느 곳에도 없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또다시 아침을 맞았음을 감사하는 것이다'라는 프랑스 격언이 있다.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다.

올해 한 해 얼마나 많은 아침을 감사하며 깨어났을까. 하루에 한 번쯤은 무엇엔가 감사한 적이 있는가. 몇해 전 추수감사절을 맞아 썼던 글의 끝맺음을 올해에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여기에 적는다.

"감사할 줄 모르고 살았던 한 해를 '반성'하며 다시 추수감사절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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