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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만델라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

원용석/사회부 차장

넬슨 만델라가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사망한 병원의 출입문 밖에서는 대형버스를 타고 도착한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소속 젊은이 수천명이 "넬슨 만델라, 넬슨 만델라"를 외치며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만델라는 1918년 7월 남아공 이스턴케이프주 음베조에서 템부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흑인이 다닐 수 있는 포트헤어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1940년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주동해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그러다 ANC를 통해 인생이 바뀌었다. 1943년부터 ANC 활동에 참여해 1950년에는 청년동맹 의장을 맡아 조직을 이끌었다. 1960년 샤프빌 흑인 대학살 사건이 일어난 뒤 그는 무장투쟁 게릴라 노선을 걸었다. 1962년 체포당해 2년 뒤 내란음모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훗날 그를 계속 괴롭힌 폐감염증도 교도소 내 채석장에서 일하다 얻은 지병이었다.

앞서 1963년 케이프타운 항구 인근에 있는 로벤 섬 교도소에 수감돼 19년간 복역했다. 1982년 케이프타운 교외의 폴스무어 교도소로 이감돼 다시 8년간 수감생활. 교도소 생활만 27년이다. 1990년 2월에야 비로소 출감됐다. 전 세계적으로 만델라 석방운동이 전개된 덕이다.



만델라는 1993년 F. W. 데클레르크 당시 남아공 대통령과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백인 정부와 협상해 인종분규를 종식시킨 공로였다. 이듬해 열린 총선거에서는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승리하면서 대통령에 선출됐다. 340여년간 이어진 백인 통치의 종지부였다.

그는 달랐다. 백인들을 내각에서 모조리 몰아내자는 목소리가 거셌음에도 대거 등용했다. 또 측근들로부터 '종신 대통령직'을 제안받았지만 1999년 6월 정치 일선에서 은퇴했다.

그는 20세기 민주화와 인권의 '3대 영웅'으로 불린다. 나머지 두 명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은 김대중 전 대통령(1924~2009), 또 한 명은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1936~2011)이다.

만델라는 백인 제국주의의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정책을 철폐시켰다. 김 전 대통령은 군부독재의 종식을 통한 민주주의 체제의 보편성을 확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벨은 독재의 붕괴를 가져온 뒤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줬다. 하지만 만델라 사망의 그림자는 어둡기만 하다. 그가 남긴 업적들과 달리 남아공은 정치인들의 이권다툼과 스캔들 속에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만델라가 이끌던 ANC는 장기집권으로 인해 썩어들어가고 있다. 흑백논란 갈등은 더욱 격렬해졌다. 역차별로 지난 10년간 남아공을 떠난 백인이 100만명 이상이다.

평등을 주창하며 제정한 흑인경제 육성정책이 되려 인종, 계층간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이 거세다. 흑백분노의 전쟁터로 변모할 무렵에 만델라가 사망하며 남아공이 다시 숙연해졌다.

만델라의 사망은 그가 남아공 국민에게 던진 마지막 메시지로 보인다. 그의 격언이 떠오른다.

"분노하지 말라. 분노는 자신이 독배를 마시면서 적(敵)이 죽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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