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라
구혜영/사회부 기자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내가 팀이라면…'이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가 충분히(?) 사용하지 않은 능력이 아까웠다. 조금만 머리를 썼다면 그는 정원 달린 주택에 살고, 더 좋은 자동차를 탈 수 있었을 것이다. 미리 입수한 시험 모범 답안지를 달달 외워 좋은 성적을 얻고, 직장 상사의 취향을 파악해 처세술로 높은 자리에 앉고, 대박 날 주식이나 상품에 투자해 백만장자가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시간여행 능력은 유전적인 것이라 영원히 사라질 염려도 없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팀도 딱 한 번 아버지에게 왜 시간여행을 자주 가지 않는지 묻는다. 아버지의 대답은 이렇다. "모두 이 시간을 태어나 처음으로 살아가고 있어.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라. 그리고 최선을 다해 멋진 여행을 반복해."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어느 눈 오던 17살의 겨울밤, 주위의 모든 것들을 '어리석고 꽉 막혔다'라고 생각하는(?) 사춘기답게 운전 중인 엄마와 격렬한 언쟁을 벌였다. 도저히 화를 참을 수 없었던 모녀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날 태어나 처음 뺨을 맞았다. 그 순간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러게 잘 키워보지 그랬어? 엄마라면 그래야 하는 것 아니야?"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도 태어날 때부터 '엄마'는 아니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많이 당황했을 것 같다.
며칠 전엔 같은 부서의 원용석 기자와 '시간과 후회'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야근 중이었던 터에 원 기자가 "뭐? 왜? 언제? 어떻게 이럴 수 있지?"하며 큰 소리를 냈던 게 대화의 시작이었다. 그는 그동안 만나려고 생각만 했던, 꼭 다시 한번 만나고 싶었던 한 사람이 급작스레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리에 앉았다, 일어서길 반복했다. "충분히 만날 시간을 만들 수도 있었는데…"라며 말꼬리를 흐리던 그는 "나중엔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없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돌아간다고 해도 또다시 후회할 거다. 하나를 되돌리려면 그와 관련된 수많은 것들을 손봐야하는데, 그건 능력밖의 일이다. 시간은 세상에 있는 얼마 안 되는 공평한 기준이다. 누구나 오늘을 처음 살아본다. 오늘이었던 어제를 후회하지 않도록 하려면 해야할 말은 꼭하고 지나가야 한다. 좋아한다면 좋아한다고, 싫으면 싫다고. 그것조차 안 하면 멀쩡하게 보이는 거짓과 허울, 위선과 체면 속에 후회할 자격마저도 잃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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