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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바로잡습니다

정구현/논설 위원

'바로잡습니다.'

2003년 2월7일이다. 10년 전의 정정 보도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단순한 표기 실수나 맞춤법의 문제가 아니라 팩트가 틀린 기사를 추측성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북한에 미국 정보를 넘겨준 국가안보법 위반으로 샌타모니카의 한 콘도에서 한인남성 A씨가 체포됐다. 그 기사에서 나는 체포된 사람을 50대 후반의 A씨가 아니라 20대 중반의 그 아들일 수 있다고 썼다. 입사 3년차 햇병아리 사건기자였던 나의 당시 추론은 이렇다.

'FBI는 체포자 신원을 확인해주지 않는다'→'콘도 입구에 붙은 수색영장에는 A씨의 이름이 쓰여있다'→'하지만 수색영장은 주택 소유주에게도 발부될 수 있다'→'이웃의 증언에 따르면 체포된 사람은 어려보였다'→'고로 A씨의 아들이 체포됐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럴 듯 해보였다. 그런데 다음날, FBI는 A씨가 체포됐다고 밝혔다. 시간 부족, 팩트 부족 등등 내 변명은 길었다. 하지만 정작 부족한 것은 취재력이었다. 확인 못했거나, 안했거나 둘 중 하나다. 어떻게 보면 단순한 실수였지만 파장은 오래갔다. 그 후부터 숫자 이외의 사실은 믿지 않기도 했고, 상대의 농담조차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려 들었다.

그렇다고 지금 나아졌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여전히 사람 이름을 종종 틀리고, 날짜나 시간은 키보드 자판의 이웃한 숫자를 찍기도 하며, 금액은 0을 하나 빠트리거나 더 쓰기도 한다. 오·탈자를 잡아주는 선배가, 후배가 없었다면 바로잡습니다 전문기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때 실수'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만큼은 하고 있다. 다른 기자들의 오보를 챙겨본다. 동질감 혹은 안도감을 느끼려는 관음증이라고 욕하는 이도 있지만, 이젠 버릇처럼 되어버렸다.

친절하게도 한 인터넷 검색포털에는 '바로잡습니다'를 모은 코너가 있다. N 포털은 초기화면 오른쪽 맨 아래에 모든 언론의 실수들을 마치 부고처럼 매일 수십건 올린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혼자서 각 언론사들의 '10대 바로잡습니다'를 꼽아봤다.

어떤 신문은 국회의원의 고향을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바꾸기도 했고, 제목에서 국가 예산의 단위를 하나 높이기도 했다. 또, 엉뚱한 사람의 사진을 성폭행범이라고 1면에 실은 신문사도 있다.

본지도 그 뻔한 실수의 범위에서 맴돌았다. 지난 한해 13건의 바로잡습니다가 실렸다. 한 달에 한 번꼴이다. 단순 오·탈자부터 팩트 확인이 안된 경우까지 이유는 다양하다.

어떤 언론이든 벗어나기 힘든 자아비판의 형틀이 '바로잡습니다'이다. 그래서 기자는 쓰기 싫어하고, 신문은 싣기 꺼려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바로잡습니다는 언론의 최우선 임무를 함축한 말이다.

부정·부패를 바로잡고, 부당을 고발하며 불이익과 불평등을 바로잡는 일 말이다.

마치 세상의 모든 잘못을 바로잡을 것처럼 뛰었지만 정작 그 칼 끝은 상대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한다. 글을 내보낼 때 두려워야할 대상은 독자이고, 글을 쓸 때 무서워 해야 할 존재는 칼을 쥔 자신인데도 말이다.

스스로와 타협하면 글은 헐거워지고, 그 틈으로 비난은 어김없이 비집고 들어온다. 바로잡습니다는 신문사와 기자의 맨 얼굴을 드러내는 유일한 기사다. 실수를 하루라도 빨리, 자세히 설명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누군가 올해의 방점을 물었다. '바로잡습니다'에 한 글자를 찍어본다.

바로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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