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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70대 유대인 할머니의 눈물

모니카 류/암 방사선과 전문의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세상 뜨기 전에 마지막 썼다는 시 '옛날의 그 집'의 끝구절이다. 1년 전부터 이 구절을 공감하며 살아오고 있다. 참으로 늙는다는 것이 얼마나 좋고 후한 일인가!

2012년 12월 말 은퇴는 했지만 말이 은퇴이지 실상 2013년은 그 전과 다름 없이 바빴다. 하지만 '은퇴'라는 삶의 새로운 장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정신적, 정서적, 시간적 여유를 주었다.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생활궤도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뒤돌아 보면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열심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같은 1세 이민자들의 이 땅에서의 삶은 비슷할 것이다. 새로운 개척자로서 그들 대부분은 시간을 쪼개가며 직장과 가정에서 성실하게 자리를 다지면서 살았을 것이다.



그냥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질문도 해 본다. 물론 거기서도 열심히 살았겠지만, 미국보다는 도움의 손이 많았을 것이고 그래서 좀 더 육체적인 여유로움은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난 이곳이 좋다. 그리고 한국이라는 모국이 있어서 또 좋다. 박경리 선생의 말대로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 그렇지만 그것도 실행에 옮기려면 아직도 환자를 보고 있는 나로서는 마음의 정돈과 실제적인 노력이 좀 더 필요하다.

언제나 봐 오던 햇살이고 하늘이고 구름인데도 은퇴 후 일찍 퇴근하면서 보는 월요일 정오의 하늘, 화요일의 햇살, 수요일의 구름, 목요일 이른 오후의 나뭇잎, 금요일에 보는 뒤뜰은 훨씬 더 평화롭고 여유있고 희망적이다. (나는 아침 나절에만 오피스에 나간다). 시간의 여유는 손주들과 많이 얽히게 한다. 아이들을 안을 때 생명의 고귀함에 대한 감사가 밀려온다. 그래서 한편 세상에 버려진 많은 아이들, 그 아이들이 당해왔고 지금도 당하고 있는, 잔인한 방식으로 그들에게 가해지는 학대를 떠올리며 속죄하기도 한다.

또 언제나 봐 오던 환자들인데도 요즘은 그 전보다 더 아프고, 더 슬프다. 그저 현명하고 똑똑한 의사짓(!)만 하다가 이제야 비로소 감성이 있는 사람이 됐나 보다. 지난 달 만났던 70대 중반의 유대인 할머니가 그랬다. 이 할머니는 말을 할 수 없고, 음식도 못씹고 침도 못 삼킨다.

루게릭병과 유사한 신경장애로 지능은 정상이다. 똑똑한 이 할머니는 생각의 표현을 아이패드로 한다. 음식은 위장에 연결된 튜브로 배달된다. 문제는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침샘에서 만들어진 침을 삼킬 수 없어 하루 종일 흐르는 침을 수건으로 닦아내야 하는 어려움이다. 그래서 침샘에 방사선을 쪼여 말려 줄 수 없느냐고 나에게 의뢰된 환자였다.

그녀의 손이 너무나 차가워서 오래도록 잡아주었더니 나를 잡고 엉엉 울었다. 낙엽처럼 가벼운 할머니의 어깨가 슬펐다. 그 할머니의 갸냘픈 어깨가 생명의 존엄을 말해주고 있었다. 숭고한 모든 생명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2014년을 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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