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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한국 흉보지 맙시다'

이종호 뉴욕 중앙일보 편집부장

한인사회에서 한국을 깎아내리는 말들을 심심찮게 듣는다. 사석에서는 물론 신문·라디오 같은 매스컴에서도 비슷한 류의 말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렇게 사사건건 한국을 헐뜯고 비난해 대는 사람들 중엔 의외로 글 깨나 읽고 썼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한인사회의 유력인사로 자처하며 방송 등에서 목청을 높이기도 하고 재미 언론인 운운하며 한국의 언론에 직접 글을 써대기도 한다.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한국을 트집 잡고 한국 사람 흉을 본다. 한국 정부가 하는 일은 뭐든지 잘못됐고 한국 사람들이 하는 것은 무엇하나 제대로 된 게 없어 보인다.

이런 얘기를 듣다 보면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대개는 내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는 기분이어서 불쾌해 질 때가 더 많다. 내가 무슨 대단한 애국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미우나 고우나 내 몸과 마음을 키웠던 곳이고 지금도 내 피붙이가 살고 있는 그 곳에 대한 험담이 그냥 듣기 싫기 때문이다.



자신은 들어가 살지도 않을 거면서 한국의 일거수 일투족에 딱할 정도로 집착하는 것도 우습거니와 멀리서 밤 놔라 대추 놔라 참견하는 것도 얼마나 볼썽사나운 일인지 모르겠다.

본인은 작심하고 내뱉는 말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남에게 상처를 주고 미처 알지 못하는 다른 진실까지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하지 못할까.

형태심리학에서 형태 변환을 설명할 때 흔히 이용되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윤곽선을 기준으로 바깥으로 형태를 구성하면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그림이 되고 안으로 보면 화분 받침대 같은 도자기가 된다. 물론 사람 얼굴로 인식할 땐 도자기는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도자기로 볼 땐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이 그림이 주는 교훈은 단순하면서도 심오하다. 동일한 대상을 두고도 사람이 어떤 시각·심리·정서를 지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뒤바뀔 수도 있음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남을 험담하는 사람들은 세상 일이 이 그림처럼 보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이다. 오로지 어두운 구석만 보도록 시각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사람들의 내면 세계를 매우 복잡한 굴곡과 층위를 지닌 콤플렉스로 뭉쳐져 있다고 본다. 이런 유형의 사람 중엔 남을 조롱하고 비웃음으로써 자기가 좀 더 우월한 위치에 있음을 과시하려는 자아도취 환자가 많다. 자신의 욕구불만이나 단점 등을 다른 대상에게 투영하여 그것을 가학함으로써 즐거움을 찾으려는 가학성 변태자들도 이런 유형이다.

나는 나이 40이 될 때까지 한국에서 살았다. 특히 80∼90년대 격동의 시대를 혈기 방장한 20∼30대로 보냈던 만큼 한국사회의 치부들을 누구보다 많이 보고 느껴 온 세대다. 한국 흉보기로 치자면 당연히 그들보다 못할 게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미국에 와 살다 보니 정말이지 한국을 헐뜯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해 보지 않았다. 그늘지고 부정적인 모습들이 곳곳에 있긴 하지만 그것은 다원화된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또 그런 단점들이 있다해도 그것이 한국의 더 많은 장점들을 가릴 만큼 거대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악의열전(樂毅列傳)’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군자는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아니하고, 충신은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제 나라를 욕하지 않는다. (君子交絶不出惡聲 忠臣去國不潔其名)”

남 험담하고 제 살던 땅 헐뜯는 것은 2천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두 소인배들이나 하는 짓임을 일깨워 주는 구절이다. 내가 나고 자란 나라 등지고 나와 사는 마당에 충신·군자가 되기는 이미 틀렸다 하더라도 돌아서서 욕하는 소인배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못생기고 가난하다 해서 제 부모를 버릴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부족하고 허물 투성이의 나라지만 그래도 언제까지나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할 모국이다. 좀더 애정 어린 눈길로 다독이고 감싸안는 ‘한국 동포’들이 되었으면 싶다.



〈nyljho@joongang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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