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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포커스] 거꾸로 가는 '미주한인의 날'

김동필 사회부장

퇴근 길에 울린 휴대폰 벨 소리. 순간 '급한 전화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가 걸려온 곳은 먼 워싱턴DC. 수화기 너머로 들린 첫 마디는 "김 기자, 통과 됐어요"였다.

연방하원에서 '미주한인의 날(Korean American)' 결의안 표결이 진행됐고 결과는 찬성 405, 반대 28. 압도적 표차로 통과가 선언되자 바로 연락을 준 것이다. 전화를 해준 분은 미주한인재단의 관계자였다. 그의 목소리는 감격에 겨운 듯 떨렸다. 즉시 사무실로 운전대를 돌려 기사를 작성했고 기쁜 소식은 다음 날짜 신문에 게재됐다. 2005년 12월 13일 밤에 생긴 일이다.

결의안 통과는 한인사회가 또 한번 일을 낸 '사건'이었다. 연방의회가 특정 커뮤니티를 위한 기념일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이민 역사가 오랜 중국이나 일본, 필리핀계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결의안을 주도했던 관계자들은 한인사회의 위상과 정치력을 보여준 쾌거라며 흥분했다. 특히 전국의 한인들이 함께 노력해 이뤄낸 결과물이라 의미가 더 컸다.

그로부터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미주한인의 날'은 어떤 모습인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지방정부의 기념식 행사가 늘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축하 메시지가 많아진 것 외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한인들은 별다른 감흥 없이 무덤덤하기만 하다. '오늘이 그날이구나'할 정도다. 아무리 기념 이벤트가 줄줄이 열려도 정작 한인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면 허당이다.



초기에는 그나마 열정들이 있었다. 뭔가를 만들어 보겠다며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들을 짜냈다.

결의안 통과 후 처음 맞는 '미주한인의 날'엔 한인업소들을 돌며 '태극기 게양 캠페인'을 벌였던 기억이 난다. 워낙 시간이 촉박해 급조된 이벤트이긴 했지만 의욕들이 넘쳤다.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인사가 직접 타운업소들을 찾아 다니며 '미주한인의 날' 의미를 설명하고 태극기 게양을 당부했다.

그런데 어쩌다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 됐을까. 한인들의 관심과 참여, 애정을 견인해 낼 수 있는 이벤트가 없는 탓이다. 정치적이고 선언적 행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올해 진행된 행사 내용들을 살펴봐도 전시 효과와 생색내기에 급급한 것들이 많다. 누구나 참여하고, 즐기고,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거리가 없다.

당연히 주관 단체의 책임이 가장 크다. 관심과 지원 부족 때문이라고 항변하지만 그 원인은 본인들에게 있다. 누구를 탓할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내분으로 단체가 쪼개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여럿이 지혜와 역량을 보태도 어려운 상황에 내분이라니. 당연히 추진력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주한인의 날'은 한인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민 선조들과 후손들을 연결하는 연결 고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인 2세와 3세, 그 이후의 세대들이 이 날을 계기로 '한인'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공동의식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큼 훌륭한 유산은 없다.

10년 전 숨은 공로자의 한사람이었던 해럴드 변씨가 통과 직후 밝혔던 소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한인사회의 위상을 보여준 쾌거다. 새로운 이민 100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이다. 각 지역 한인사회가 협력해야 정치력 성장도 배가 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리고 이 날을 어떻게 발전시켜 가느냐 타 커뮤니티에서도 주목할 것이다."

그의 소감은 아직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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