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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데스밸리에서 별을 보다

이종호/논설위원

데스밸리에서 세모의 밤을 맞았다. 미국에서 가장 낮고 가장 뜨거우며 가장 메말랐다는 땅이다. LA에서 대여섯 시간 거리, 해수면 보다 낮은 배드워터 소금밭에서 30분 쯤 떨어진 길섶에 차를 세웠다. 헤드라이트를 껐다. 칠흑같은 어둠속, 계곡의 밤은 적막했다.

하늘을 봤다. 빼곡하게 박힌 별들이 와르르 쏟아질 듯했다. 낮은 동쪽 하늘엔 방패연 모양의 별자리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익숙한 오리온자리다.

W자 모양의 카시오페이아,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을 더듬어 북극성도 찾았다. 빛의 속도로도 800년이나 가야 하는 먼 별이다. 지구와는 그나마 가깝다는 별이 그렇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저 별빛은 고려시대 어느 때 쯤 출발한 빛이라는 말인가.

도대체 우주가 얼마나 크기에? 수천 억 개의 별이 모여 은하가 되고, 그런 은하가 또 수천 억 개 이상 모여 있다는 저 하늘, 무한의 공간, 그 속에서 우리 지구는? 그리고 그 위에 다닥다닥 붙어 사는 우리 인간이란? 휘황한 별빛 아래 어느새 철학자가 되어 갔다.



문득 무인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가 생각났다. 1977년 발사된 후 36년간의 태양계 여행을 끝내고 작년 9월 마침내 미지의 우주 속으로 날아갔다는 그 비행선이다.

그가 찍어 보낸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유명한 사진이 있다. 카메라 작동이 중지되기 직전 수십억km 밖에서 마지막으로 전송한 사진이다. 그 속에서 지구는 따로 표시를 하지 않았다면 찾지도 못할 작은 점일 뿐이다. 충격적인 그 사진을 보고 세계적인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렇게 썼다.

"저 점을 보라. 저것이 여기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아는 모든 이들이 바로 저기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의 총량, 수없이 많은 그 강고한 종교들, 이데올로기와 경제정책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비겁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인류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저기 저 티끌 위에서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

그래서 어쨌다고? 진부하지만 세이건의 결론은 여전히 새길 만하다. 너 나 없이 이 좁은 땅덩이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처지인데 무얼 그리 아웅다웅인가. 그렇게 그악스럽게 편가르기해서 무엇 하려고. 할 말 못할 말 마구 쏟아내며 모질게 살아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새해를 앞두고 뭔가 각오라도 다지겠다는 심사로 데스밸리를 찾았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별을 본 뒤 마음이 달라졌다. 나 역시 먼지처럼 스러질 인생인데 무슨 거창한 계획이 더 필요할까. 그저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기쁨만으로도 족하다고 생각했다. 갖지 못한 것에 불평 말고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먼 이웃 살피는 것도 좋지만 지금 곁에 있는 사람 하나라도 더 사랑하리라 작정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당장 격조했던 지인들에게 제법 긴 새해 안부편지를 썼다. 한두줄 문자 메일이 대세인 요즘 그게 뜻밖이었나 보다. 답장들이 쏟아졌다.

정작 나만을 위한 편지글을 읽어 본지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는 친구, 평소 알지 못했던 생각과 근황을 장황하게 적어 보낸 선배, 인생 별 것 있나 건강하면 그게 제일이지, 자녀 무탈하고 부부 화합하니 그만한 행복이 또 어디 있겠냐며 덕담을 보내 준 집안 어르신들까지. 그들의 이메일을 읽으며 모처럼 사람의 향기에 취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그 어느 곳보다 많은 것을 일깨워 주는 곳이 데스밸리다. 이번 연초 내가 누린 작은 기쁨도 그 곳 밤하늘에서 길어 올린 허무가 가져다 준 역설의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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