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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영혼 없는' 문자로 쓴 편지

이성연 / 경제부 차장

기자의 눈



'영혼 없는' 문자로 쓴 편지





이성연

경제부 차장



어린 시절, 편지의 추억이 있다. 멀리 해외로 이민 간 친구로부터 날아온 빨강 파랑 빗금이 쳐진 편지의 설렘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한자 한자 꾹꾹 눌러 써 우체국 저울 위에 올려 그리움까지 같이 보낸 편지의 답장이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편지들의 나의 보물이다. 지금은 누렇게 변했지만 친구와 나의 사이에 역사가 모두 새겨져 있다.

어릴 때는 손편지를 곧잘 썼다. 반드시 써야만 하는 목록도 많았다. 초등학교 시절 국군장병 아저씨께 보내는 위문편지, 스승의 날 선생님에게 보내는 감사편지, 첫사랑이자 우상이던 가수에게 마음을 가득담은 팬레터까지. 또 미지 세계의 친구들과 펜팔이 유행하던 시절도 있었다.

2014년을 사는 지금, 손 편지가 실종돼 가고 있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예전보다 몇 배의 편지가 넘쳐난다. 이메일,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인터넷 세상 속에서 하루에도 수십통의 편지와 메시지가 오고 간다. 클릭 한번이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순식간에 배달되는 인터넷 속 편지의 편리함은 이루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나 이런 인터넷 속 편지에는 손편지가 지닌 순수한 매력이 없다. 편지를 쓰면서 느끼는 가슴 떨림과 기다리던 답장을 읽으며 느끼는 설렘은 손편지만의 장점이다.

지난 1일 새해아침. 간밤 사이 30여통의 카카오톡 메시지가 전송됐다. 한국 등 뿔뿔이 흩어져 있는 지인들로부터 온 새해 인사 메시지다. 비슷한 이미지와 이모티콘에 '복사+붙여넣기'를 한듯이 같은 메시지다. '영혼 없는' 문자는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하다. 함께 전송된 이미지는 마음까지 담아서 전해지진 않았다.

무엇인가 잃어버린 기분이다. 요즘은 모바일 청첩장도 눈에 띈다. 초대받는 사람이 함께 기뻐해 주고 축하하는 마음을 보내주는 것처럼, 초대하는 사람도 최대한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문자보다는 전화로 전하는 소식이, 모바일 청첩장보다는 직접 만나서 건네는 청첩장이 더 반갑다.

편지가 사라지자 우체국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미 전역의 우체국은 10년 전 3만8000여개였지만 우편물 감소로 인한 적자 누적으로 그간 7000여개가 문을 닫았다. 예상 적자는 83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폐쇄 검토 대상에 오른 지점은 대부분 시골에 있다. 아직 시골에서는 세상과의 창구일지도 모른다. 21세기가 남긴 씁쓸한 현상이다.

마음을 전하는 편지의 위력은 정말 대단하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매년 연말연시에 2000명 가까운 지인들에게 손수 편지를 쓴다는 기사를 읽었다. 외교부 재임 시절에는 발탁승진을 사양하다 결국 승진하게 되자 부처 내 선후배, 동기 100여명에게 미안하다는 뜻을 담은 친필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인간관계 달인의 비법'인지도 모르겠다.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주는 손편지의 감동은 이메일이나 모바일 메신저와는 비교할 수 없다. 파란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돌아선 뒤 답장을 기다리는 간절함도 행복이다. 세상은 훨씬 편리해졌지만 잃은 것도 많다. 이번 설날에 가까운 지인과 친구에게 그리움을 꼭꼭 눌러담은 편지한 통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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