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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사관(史觀)에 대한 단상

1898년 가을. 미국 월스트릿의 대표적 이론가이며 대통령의 투자 자문역이기도 했던 언론인 찰스 코난트(Charles Conant)는 'The Economic Basis of Imperialism'이란 논문을 발표한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제국주의 대박론(論)이다.

그해 여름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쿠바 등 카리브해에서 스페인이 지배했던 섬들과 아시아의 필리핀이 이제 미국의 손바닥 위에 놓였다. 꼭 움켜쥘 것인가? 아니면 이들의 독립을 인정할 것인가? 국론이 양분되었다. 제국주의를 영토가 좁은 유럽의 나라들이 티격태격하며 벌이는 땅따먹기 게임으로 바라보는 미국인들이 많았다.

코난트는 제국주의 회의론을 없애기 위해 '식민지=대박'의 논리를 폈다. 산업화로 인해 미국을 포함한 서양 열강은 거대한 자본을 축적했다. 국내에는 더 이상 자본의 생산적 투자 기회가 없다. 문명의 혜택을 입지 못한 곳으로 자본을 이동시켜야 한다. 길을 내고 댐을 만들고 공장을 짓는다. 선진국은 돈을 벌고 후진국은 문명을 얻는다. 이것이 순리다.

코난트는 우리 민족에게 참으로 아픈 역사 해석을 곁들였다. 19세기 말의 일본을 제우스신의 머리에서 세상에 튀어나온 지혜.예술.전술의 여신 아테네에 비했다. 서양의 도움으로 새롭게 태어난 일본을 동양을 지배할 거의 완전한 존재로 본 것이다. 동양의 아테네가 차지한 첫 활동 공간이 조선이다.



제국주의 대박론은 제국주의 책무(責務)론으로 확대된다. 영국의 문인 루디야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은 코난트의 논문이 나온 다음 해인 1899년 '백인의 짐(The White Man's Burden)'을 발표한다. 야만의 땅으로 가서 미개인들에게 해방을 주어야 한다고 이 시는 노래한다.

모세가 당했던 것처럼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고 내었느냐는 무지몽매한 불평이 쏟아지더라도 이는 마땅히 백인종이 짊어져야 할 짐이었다. 제국주의를 출애굽 사건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놀라운 상상력이고 당위성의 부여다.

제국주의 대박론은 제국주의 진화(進化)론으로 종결된다. 영국의 수학자 칼 피어슨(Karl Pearson)은 1900년 발표한 논문에서 제국주의란 적자생존의 과정을 거쳐 민족은 더 높은 단계로 진화한다고 주장한다. '제국주의=민족의 승화'란 등식을 만들어진 것이다.

제국주의는 20세기 역사의 쓰나미를 유발하는 진원이 된다. 식민지를 통치.착취하기 위해서 지배 민족의 우월성과 피지배 민족의 후진성을 사상 학문적으로 체계화한다. 자기 최면이고 양심의 마취가 요구된다. 그후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동원되는 폭력은 미개발 민족을 개명.발전시킨 문명화로 포장된다. 끝내 피지배 민족은 지배자의 더 큰 욕심을 달성키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이렇게 식민 통치자의 가장 치욕스런 도구로 이용당했던 한 여성이 그저께 사망했다. 종군 위안부 피해자 고 황금자 할머니이시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밥그릇이 수북할수록 으르렁거림이 늘어난다. 식민지가 늘어나고 거기서 취하는 이득이 커질수록 경쟁심 질투심 호전성 그리고 피해자의 저항의식은 강해진다. 20세기 역사의 두 쓰나미 세계대전과 민족해방투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비극적 역사의 가장 깊은 상처를 안은 집단이 바로 우리 민족이다. 이 같은 제국주의 역사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며 멈추지 않는 투쟁 의식을 통치의 에너지로 삼는 나라가 북한이다.

우리 민족의 평화적 통일은 세계 공동체의 상처 치유로서의 의미가 먼저다. 미움과 싸움 없는 한반도와 한민족이 세계사에 큰 발자취를 남길 것은 상상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이상과 희망이 '대박'이라 불리는 것은 경박하다. 놀음판 슬롯머신에 더덕더덕 쓰여진 'Jackpot'으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또한 통일 후의 북한을 단순한 투자의 최적지로 포장하면 제국주의 대박론이 떠오른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굳이 '통일=대박'의 슬로건을 고집할 것이면 영어 표현은 'Jackpot'이 아닌 'Windfall'을 선택했으면 좋겠다. Windfall은 잘 익은 과일이 바람에 떨어져 수확에 들어가는 수고를 덜어 주는 행운을 말한다.

Windfall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먼저 실한 과실이 열리도록 농사를 지어야 한다. 달리 표현하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에 가까운데 우리 민족의 통일에도 요구되는 자세가 아닐까.



이길주

버겐커뮤니티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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