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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한국의 역사 교과서 채택 논란

이종호/논설위원

#. 한일 양국의 역사 교과서가 동시에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은 검정 교과서 채택 문제로, 일본은 과거사 왜곡과 관련해서다. 위안부 문제, 난징대학살 등 전쟁 범죄의 축소 은폐에 이골이 난 일본의 행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역사 교과서는 무엇이 문제일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 내용, 특히 현대사 부분의 기술이 바뀌어 온 것이 최근 십 수 년의 현실이다. 거기에 필수냐 선택이냐, 대입 시험에 들어가느냐 아니냐의 논쟁까지 더해졌고, 국정 교과서에서 검인정으로 바뀌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작금의 교학사 교과서 논란은 그 정점이다.

결국은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싸움이다. 진영은 현재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갈린다. 거칠게 나누자면 오늘을 극복의 대상으로 본다면 진보요, 지키고 계승해야 할 가치로 여긴다면 보수다. 지금 한국 사회의 온갖 현안들에 대한 사생결단 대립은 근원적으로 이런 인식 차이에 뿌리가 닿아있다.

역사는 선택이고 해석이다. 거기엔 개인의 주관이 작용한다. 시대 분위기도 개입한다. 보수 진보 양측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역사에 있어서 절대적 진실이란 없다. 있다면 진실에 다가서려는 양심적 노력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자기의 역사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신이거나 역사를 어떤 목적 달성의 도구로 삼으려는 특정 세력의 궤변일 가능성이 크다.



대학 때 민두기 교수(1932~2000)로부터 몇 학기 역사를 배웠었다. 한국의 동양사 연구를 세계 수준으로 올려놓았다고 평가받는 석학이었다. 그가 수업 시간에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사료가 모든 것을 말해 준다'는 것이다. '역사가는 정치가가 아니다'는 말도 자주 했다. 객관과 실증만이 왜곡된 역사를 막을 수 있다는 신념이자, 이념과 정치에 역사가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대 학자의 소신이었다. 그의 생각이 100% 옳았다는 말이 아니다. 실증주의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현실과의 과도한 거리두기로 이어져 역사의 기능을 제한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하지만 요즘의 역사 교과서 채택 논란을 보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역사를 강조했던 그의 혜안이 새삼 절실해진다.

#. 교학사 역사 교과서가 전국 수천 개 고등학교 중 단 한 곳에서만 채택됐다고 해서 말들이 많다. 다양성의 실종이라며 우려하기도 하고 그 한 학교마저도 취소돼야 한다며 시위가 벌어지기도 한다. 나는 문제의 교과서를 직접 읽어보지 못했으니 친일과 독재 미화로 대표되는 왜곡 논란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은 못하겠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 자체에 대해서도 수백 건의 오류가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여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것이야말로 '교학사 논란'의 핵심이라고 믿는다.

오류는 관점이나 해석의 차이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오류는 사실(fact)을 잘못 기술한 것이며 역사 왜곡은 대개 그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역사란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진 확신이라는 말이 있다. 역사에서 이것 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히틀러의 그릇된 확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갔는가. 시대를 오판한 독재자의 어설픈 확신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기아와 빈곤으로 내몰았는가.

역사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순한 과거의 기록을 넘어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거울이 세상을 바로 보여줄 수 없듯 오류투성이의 교과서로는 바른 눈을 가진 인재를 키워낼 수가 없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분노하면서 우리의 역사 교과서의 잘못된 방향을 외면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거기에 오류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좌편향이라며 싸잡아 삐딱하게 보는 것은 더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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