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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한인사회 6개월 체험기

오세진/사회부 기자

1993년이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바둑학원에 다녔다. 바둑이 두뇌 교육에 좋다는 '바둑 열풍'이 불면서다. 당시 한국 바둑은 중흥기를 맞이했다. 조남철, 김인, 조훈현, 이창호로 이어지는 막강 계보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특히 1989년 조훈현 국수가 바둑 올림픽이라 불리는 응씨배에서 우승한 것은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돌의 이치를 배우기란 어렵기만 했다. 그러다 '축'이란 기술을 배웠다. 기본적인 기술 중의 하나인데 당하는 쪽은 몇 수만 이어가도 매우 큰 피해를 받는다. 축에 걸렸을 때는 응수하지 말라는 뜻으로 '축 한 번 나가면 7집 손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자신 보다 못한 하수를 상대할 때 쓰는 꼼수다. 바둑 선생은 축의 기술을 부리면 언제든 회초리를 들었다. 정정당당한 방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눈물을 머금고 축과 이별해야만 했다.

바둑 용어인 '꼼수'는 일상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말이다. 상대방을 속이거나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 사용하는 수단을 의미한다. 상대방의 실수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지칭하기도 한다. 대부분은 위트를 섞어 상대방이 알 수 있는 정도에서 얕은 꼼수를 쓴다. 즉,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조삼모사의 수준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LA 한인사회는 꼼수의 정도가 매우 심했다. 한인사회에 발을 디딘 지도 6개월. 하숙집 주인에게 뭣 모르고 예치금을 떼였고, 한인 렌트카를 이용할 땐 차를 망가뜨렸다며 수백달러의 덤터기를 쓸 뻔 했다. 취재를 하면서도 꼼수는 보였다. 가짜 운전면허와 비자를 발급하며 사기를 친 이도 있었고, 공금을 횡령하는 일도 숱하게 목격했다. 심지어 보존해야 할 독립운동 사적지가 개인의 욕심으로 대출 담보가 돼 엉뚱한 곳으로 넘어가는 사단도 났다.



LA에 살면서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조언도 "한인을 가장 조심하라" 였다. 어느 사회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민 동포사회에서의 꼼수는 훨씬 더 치명적이다. 자칫 미국 전체에 한인들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분명 꼼수가 통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꼼수가 통한다는 것은 사회의 규칙이나 규범이 곧 무력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구성원들이 화합보다는 반목과 대립의 성향을 보일 때 꼼수문화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오늘날 한인 사회는 동포 간에 여러 가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한.일 역사 전쟁, 이민법 개혁 등 미주 한인 사회가 뭉쳐야 할 일이 많은데 말이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필요한 시기다. 이런 평범한 진리가 장강의 물결처럼 사회 전방에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꼼수문화부터 사라져야 한다.

우리는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른다. 공정한 게임의 룰 속에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팬들과 대중은 승패를 떠나 그들이 정정당당하게 게임에 임했기 때문에 박수를 보내고 감동을 받는다. 한인사회의 구성원들도 자신의 위치에서 본분과 직분을 다하고 올곧게 자아실현을 위해 정진한다면 꼼수문화는 사라질 것이다.

호랑이 바둑선생처럼 누군가 회초리를 들고 일깨워 줄 일은 없다. 이제 한인사회가 스스로 꼼수와 결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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