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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요즘 도서관에 가보셨나요

이종호/논설위원

한국에서의 도서관에 대한 기억은 빈곤하다. 고 1 겨울방학 때였다. 공부를 좀 해야겠다 싶어 버스를 타고 꽤 먼 구립도서관을 다녔는데 새벽부터 벌벌 떨며 줄을 섰던 기억만 남아있다. 열람실 칸막이의 조잡한 낙서를 찾아 읽던 재미와 엉성한 매점에서 불어터진 라면을 먹던 기억도 추억이라면 추억이다.

대학 도서관의 기억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책을 읽기보다는 주로 시험공부를 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시험기간이면 피 터지게 자리잡기 경쟁을 벌이던 모습과 침 흘리며 졸던 기억은 아직도 낯이 뜨겁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동네 도서관을 가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던 기억은 그래서 더 새롭다. 뉴욕 베이사이드의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도서관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분위기도 그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편안하게 드나드는 것도 신기했다.

1년 뒤 좀 더 외곽으로 이사해서 만난 도서관은 더 놀라웠다. 번듯한 시설의 독립 건물인데다 주차장도 넓고 쾌적해 그야말로 동네 사랑방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도 흥미로웠고 시니어들을 위한 다양한 강좌도 눈길이 갔다. 동네 도서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서가와 다양한 책과 잡지와 시청각 자료들 역시 놀라움이었다. 작가 초청 강연, 독서토론, 음악, 미술, 댄스, 요가 등 각종 모임을 수시로 개최했고 영어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을 위한 영어교육도 주선해 주었다. 그때 받은 느낌은 세계 최강의 나라 미국의 힘이 바로 이런 도서관에서 나오는구나 하는 시샘과 부러움이었다.



벌써 10여년 전 일이다. 그래도 그때는 아이가 어렸던 탓인지 꽤 열심히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 옛 이야기가 됐다. 도서관을 찾아 지긋이 앉아 책을 읽었던 것이 언제인가 싶다. 왜일까.

아이가 자라 굳이 데리고 갈 일이 없어진 탓이 클 것이다. 또 일상이 바쁘다는 것도 핑계 일 수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굳이 도서관에 가지 않아도 읽을 것, 볼 것을 제공해 주는 것이 주변에 널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최근 몇 번 들러 본 우리 동네 도서관도 예전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이를 동반한 젊은 부모도 확실히 줄었고, 열람석에 앉아 무엇인가를 뒤적이는 사람도 나이든 백인 노인 몇몇 외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종이 신문, 종이 책이 그런 것처럼 이젠 도서관도 점점 아날로그 시대의 풍경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랄까.

지금도 도서관 하면 미국이다. 세계 최대 장서를 자랑하는 연방의회도서관은 물론, 도시마다 타운마다 경쟁적으로 공공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거기에 각 대학 도서관, 학교 도서관까지 치면 전국의 도서관은 얼마나 많은가. OECD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미국의 공공도서관은 9221개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인구 3만4000여 명당 한 개 꼴이다.

그러나 이제 도서관 숫자만 가지고 자랑할 때는 지난 것 같다. 스마트폰 하나면 어떤 도서관 못지 않는 정보와 지식을 그 자리에서 검색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책을 보관하고 빌려주고 읽고 하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도서관은 확실히 설 자리가 좁아져 간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e북이 활발해지면서 아예 '책없는 도서관'도 나타나고 있다.

당연히 도서관들도 진로 모색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방향과 방식이 어떤 것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앞선 세대의 지식과 경험을 계승하고 보급하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기능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희망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 세계 최고 부자가 된 빌 게이츠는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도서관 풍경이 사라지고 있는요즘 아이들은 훗날 어떻게 말할까.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구글이었다"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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