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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연줄·빽줄'에 이기고 지는 세상

이종호/논설위원

주말 내내 이어졌던 아쉬운 마음이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김연아 선수 얘기다. 네가 진정한 챔피언이다, 고맙다, 네가 있어 행복했었다는, 위로와 칭찬의 말들은 넘쳤다. 그렇다고 빼앗긴(?) 금메달에 대한 억울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는 우리가 이런데 정작 본인은 얼마나 더 분통이 터졌을까.

완벽한 경기를 펼치고도 러시아 관중의 텃세와 심판진의 석연찮은 판정에 올림픽 2연패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래도 김연아는 의연했다. 마치 도인같은 말도 했다. 매달 색깔에 관계없이 마지막 무대를 실수 없이 마칠 수 있어서 기뻤다고. 더 절실했던 사람에게 금메달이 돌아간 간 것이라고. 그럴수록 팬들은 더 부아가 치민다. 이런 '쿨한' 태도가 관록이고 보통 사람이 갖지 못한 성숙함이며 김연아만의 매력이라는 것은 안다. 그렇더라도 이럴 땐 한 번 쯤 투정도 하고 억울함도 호소했더라면 그게 훨씬 더 인간적이었을 텐데 하는 얄미운 생각까지 든다.

사실은 대한빙상연맹이 결과가 나오자마자 바로 세계빙상연맹(ISU)에 이의제기를 했어야 했다. 그게 지금까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 김연아에 대한 예의였다. 하지만 이런저런 눈치 살피느라 때를 놓치고 말았다. 뒤늦게 편지를 보내 본들 공식 이의제기도 아니었는데 무슨 반전이 있었을까. 오히려 잃어버린 금메달을 찾아주자고 나선 것은 열렬 팬들이었다.

주말에도 인터넷은 뜨거웠고 카톡과 페이스북에는 ISU에 재심을 요청하자는 독려의 글이 쇄도했다. 100만 명이 서명하면 재심을 할 수밖에 없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순식간에 200만명 이상이 온라인 서명도 했다. 그래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ISU는 공식 홈페이지에 "모든 판정은 엄격하고 공정했다" 며 논란을 일축했다. 어떤 해외언론은 도리어 한국인의 이런 행태를 지나친 스포츠 애국주의라며 냉소했다. 우리로선 땅을 칠 노릇이지만 그게 현실이다.



하긴 경기 내용과 상관없이 정치와 모략과 술수에 의해 메달 색깔이 바뀐 것이 한 두 번이었던가. 재작년 런던올림픽 때 펜싱의 신아람 선수의 그 분통 터지는 1초를 우리는 기억한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땐 강탈당한 김동성의 금메달은 또 어땠고. 그렇게 치면 김연아는 행복한 편이었다. 수억 명이 박수치며 사실상의 금메달이라며 인정해 주었으니 말이다.

세상엔 2등보다 못한 1등도 많고, 1등보다 나은 2등도 얼마든지 있다. 아니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서도 2~3등은 커녕 등수에도 들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피겨 판정이 늘 주관적이어서 자주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흔히 그렇다. 누가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은 사람도 떡하니 상을 받고, 전혀 별 볼일 없는 작품도 버젓이 입상작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더 큰 문제는 불공정이네 편파판정이네 흥분하다가도 정작 내가 그 편파의 혜택을 누릴 때는 잠자코 있는 것이 또한 우리네 심사라는 것이다. 한국이 거둔 1988년 서울올림픽 때의 종합 4위, 2002년 월드컵 때의 4강이라는 경이적인 성적도 지금 돌이켜보면 개최국의 이점을 전혀 누리지 않았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4년 뒤, 평창에서 이제 우리는 다르리라 어떻게 자신할 것인가.

실력대로 능력대로 평가받는 무대는 어찌 보면 꿈이다. 천하의 피겨 퀸도 '아, 짜다'며 불편한 심중을 토로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분하지만 이쯤에서 접자. 원치 않는 결과라도 뒤집을 힘이 없다면 흥분해봤자 자기만 손해다. '연줄.빽줄.운줄'에 밀렸다 해도 세상은 그런 것조차도 실력이라지 않는가. 그저 이번 일로 부끄러운 1등보다 정정당당한 2등의 가치를 깨닫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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