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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미국에서 영화보기

이종호 뉴욕중앙일보 편집부장

미국은 영화의 나라다. 영화관만 해도 1만6천개여나 된다. 전국 통틀어 영화관 500여개에 연간 50여편 안팎의 영화가 겨우 만들어지고 있는 한국과는 비교 자체가 안된다.

TV와 비디오가 인기를 끌고 프로 스포츠 때문에 관객이 줄었다고는 하나 미국인들에게 영화는 여전히 중요한 오락이다. 특히 6∼8월 휴가철에 맞춰 집중 개봉되는 할리우드 대작들을 먼저 보기 위해 새벽부터 장사진을 치고 기다리는 모습은 이미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이다.



영화관과 담쌓은 미국생활





미국의 영화관은 한국의 과거 3류 극장이 그랬던 것처럼 지정석이 없다. 그냥 입구에서 표를 사서 아무데나 편한 자리에 앉아서 보면 된다. 또 대부분의 영화관들이 한 곳에 10개 이상 상영관이 모여 있는 복합상영관이다.

따라서 들어가다 마음이 바뀌면 다른 곳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슬쩍 다른 상영관으로 들어가 다른 영화를 또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많은 것을 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나라라서 그런지 이런 문제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는 것 같지는 않다.

미국 영화관의 이런 풍경들을 내가 직접 확인한 것은 미국 온지 거의 3년이 다 되어서였다. 그래도 한 때 영화 좀 본다고 자처하던 사람이 환경이 달라졌다고 이렇게까지 극장과 담을 쌓게 될 줄이야.

물론 이유가 있었다. 우선 아이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부터 점점 문화생활과 멀어지기 시작했던 터에 미국에 온 후로는 따로 애를 봐 줄 사람조차 없어졌으니 더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조금 부끄러운 얘기긴 하지만 미국 영화 보면서 한글 자막없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 극장 갈 엄두를 못 냈던 탓도 있다.

없는 시간 쪼개고 비싼 돈까지 들여 보는 영화,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파악도 못한다면 그 무슨 시간낭비일까 싶어서였던 것이다.

“귀찮게 뭐 극장까지 가나. 조금만 기다리면 비디오로 나올 걸” 이라는 생각도 물론 한 몫을 했다.

하여간 이런 저런 이유로 영화관 구경을 못하다가 마침내 지난 주말 처음 미국 극장이란 델 가 봤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 녀석이 ‘니모를 찾아서’라는 영화를 듣고 와 누구도 보고 누구도 봤는데 자기만 못 봤다며 하도 졸라대기에 할 수 없이 데리고 간 것이다. 아이 때문에 못 간다던 영화관을 도리어 아이 때문에 가게 되다니, 세상 일이라는 게 참 이렇게도 돌아가는구나 싶었다.

우리가 간 동네 극장은 주말인데도 한산했다. 뜻 밖이었던 것은 매표소에서부터 여기저기 한국 사람들이 꽤 눈에 띄었다는 점이다. 친구끼리, 가족끼리 나온 듯한 그들은 모두 20,30대의 젊은 축들이었다.

하긴 아무리 영화를 좋아한다 해도 나이 들어 영화관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한인전용 영화관 생겼으면



생각해 보면 1세들 치고 영화 싫어했던 사람은 없을 성 싶다. 60∼70년대 변변한 문화 공간 하나 제대로 없던 시절, 변두리 3류 극장일 망정 그나마 문화요 오락이랍시고 죽자고 찾아 다녔던 세대가 바로 40, 50, 60대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둡고 냄새나고 희뿌연 먼지 둥둥 떠다니던 극장, 딱딱한 의자에 앉아 죽죽 비 내리는 화면으로 동시상영 영화, 관람불가 영화들을 보며 온종일을 보내던 추억 한 둘 쯤은 이들 세대라면 누구에게나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렇게 좋아하던 영화도 세월 따라 멀어지고 이민 생활과 함께 잊혀지고 만 것을. 그래서인지 주변을 보면 미국에 오래 산 사람일수록 고국 문화에 더 많이 목 말라 한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어쩌다 한 번씩 들어오는 한국 영화나 한국 공연에 다들 그렇게 열광하는 것도 모두 이런 문화적 갈증의 반영이리라.

사정이 이렇다면 이제는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에는 한인 전용 영화관 하나쯤 생길 때도 됐다는 생각을 해 본다. 괜찮은 한국 영화 영어자막 넣어서 2세들도 같이 보게 하고, 최신 할리우드 영화는 한글 자막 넣어 영어 짧은 1세들도 마음 편히 즐기게 하고…. 얼마나 좋을까.

어쨌든 그런 영화관이 생긴다면 나부터라도 당장 달려갈 것이다.

〈nyljho@joongangu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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