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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엿가락 시간

최진수/시인

'엿가락 시간'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누구는 푸근한 마음 펴서 쭈욱 늘려본다/달콤 하얀 미소 길게 번지게/또 누구는 자기 스스로 가두어 점점 잘게 자르고 어제가 오늘이고 내일도 그제이고/짤까닥 짤까닥 엿 판 누워있는 스물네 개 말고는 자를 수 없는 넓적한 가위/엿장수 달구지 손님 나이만큼 빠르게 달려준다/라고요.

엿장수를 기억하시나요. 가난이 당연하다고 느끼고 살았던 그 시절, 동네를 돌며 자판 위에 하얀 분칠한 엿을 놓고 짤까닥 짤까닥 헐렁하게 네모난 엿가위 질로 코흘리개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 늙수그레한 아저씨 말이지요.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먹을거리를 사줄 형편이 안 되니, 엿장수들이 엿을 바꾸어줄 만 한 것들을 정성스레 모아 두었다가 엿장수가 오면 엿으로 바꾸어 주었지요.

엿장수는 처음에는 지게에다가 자판을 지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60년대 언제쯤인가 들어서서는 손수레에 자판을 올려놓고 손수레 안에는 온갖 고물을 싣고 다니던 기억이 봄 날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동네에 오는 날짜도 일정치 않았고 재활용 가능한 빈병, 종이, 쇠붙이 등의 값어치를 메기는 일은 엿장수 맘이었습니다.



해맑은 눈동자 아이들이 조막만한 두 손으로 더 달라고 조르면 못 이기는 척, 엿 가락을 가위로 툭 잘라 주던가, 넓적한 엿판에 쇠로 만든 끌을 대어 가위로 쳐서 엿을 찔끔 끊어 주었었습니다. 그 엿은 제조과정부터 좍 늘려가며 만들기 때문에 먹으면서 늘려가며 먹을 수도 있지요.

마치 하루의 24시간을 어떤 사람을 길게, 또 어떤 사람은 순식간에 지나간 것처럼 매일 짧게 써버리며 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여기서 삶의 중요한 문제가 제기됩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이 스물네 가락 시간을 어떻게 하면 엿처럼 달콤하게 늘려가며 살아 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지요.

매일 학교, 직장에서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하다가 보면 화요일이 그제이었던 것 같은데 일주일이 '휘익' 지나 오늘 또 화요일입니다. 그렇게 살다가 보니 벌써 3월입니다. 이런 식으로 3개월이 지나가면 인생의 3년 그리고 30년이 그냥 확 지나가버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게 되지요. 백세 시대라고 하는데 휙 지나가는 백세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여행을 갔을 때는 어떻습니까. 같은 하루가 얼마나 깁니까. 시간의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오십대는 오십 마일, 육십 대에는 육십 마일, 이런 식으로 인생이 질주한다는 자동차 속도 비유로 본다면, 이 질주를 막는 길은 하나입니다. 브레이크를 자주 밟아 주는 것입니다.

이 브레이크는 바로 자신이 평소에 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할 때 브레이크가 걸립니다. 자기 형편에 맞게 평상시에 하지 않던 것을 찾아 새로운 것으로 매일의 삶의 질을 늘려나갈 때 시간은 엿장수 마음처럼 길게도 짧게도 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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