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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음악 산책] 가사와 곡조

 우리는 흔히 다음과 같은 알쏭달쏭한 질문을 한다. “닭이 먼저일까? 아니면 달걀이 먼저일까?” 만약 닭이 먼저라면 그 닭은 달걀 없이 어떻게 나왔을 것이며, 만약 달걀이 먼저라면 그 달걀은 닭이 낳지 않고 어떻게 생겼다는 것인가?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생물학자였던 에른스트 헥켈(Ernst Haeckel)의 “개체발생이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는 이론을 도입해 풀어보고 싶다. 이 이론은 쉽게 풀자면 한개의 배아가 발달해 나가는 동안에 그 여러 선조의 진화 단계를 거친다는 이론이다.

 말하자면 수정란으로부터 사람이 되는 동안 어류, 양서류, 조류, 포유류의 진화과정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 보자면 모든 출발은 단세포인 수정란에서 비롯되며 그 진화가 조류에서 멈춘 것이 닭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체의 생식과정에서 수정란 자체도 진화를 하여 보호를 위한 각질이 생겼다면 이것이 달걀이 될 것이다.

 물론 ‘진화론’ 자체의 진위 여부를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지만, 닭과 달걀의 우선순위라는 다소 고루한 논쟁이, 닭도 달걀도 아닌 원시의 단세포 생명체 먼저라는 새로운 방향에서의 접근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또 다른 우선순위의 질문을 해본다. “과연 음악이 먼저일까? 아니면 가사가 먼저일까?” 이 문제도 언뜻 생각해서 음악이 먼저일지 아니면 가사가 먼저일지 쉽게 해결이 나지는 않는다.

 음악사를 통해 보자면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기 이전에 음악을 먼저 사용한 것으로 나와있다. 원시 시대에 구애(求愛) 등을 목적으로 울부짖은 것이 음악의 시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에는 음악이 어떠한 세련미를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이후 인간의 머리가 발달하고 성수격시(性數格時)로 변하는 고도의 언어를 구사하면서 가사에 걸맞는 아름다운 음악을 소원하게 되었다. 특히 중세기의 수도원에서는 하루종일 기도와 일을 교대하면서(Ora et Labora) 무언가 활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기도문에 음표를 붙이는 것이었다. 단순히 기도문만 암송하는 것보다는 기도문의 라틴어 인토네이션이나 악센트에 맞추어 멜로디를 불러나가는 것이 훨씬 감흥이 있고 그 효과가 배가 되었다. 그래서 성 아우구스티노 같은 이는 “성가를 한번 잘 부르면 기도를 두번 하는 것과 같다”라고도 하였다.

 실제로 그레고리오 성가는 기도를 위해 탄생한 음악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요한 이유를 마디가 없음에서 찾을 수 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4선으로 된 악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현대악보에서 와는 다르게 마디가 없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음악과 가사의 주종관계를 확실히 해주는 요소가 된다.

 왜 마디의 유무가 음악이 먼저인지 아니면 가사가 먼저인지의 주종관계를 결정짓는 것일까? 만약 현대 음악에서처럼 그레고리오 성가에도 마디가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그렇게 쉽게 가사를 붙일 수 없게 된다. 한 마디안에는 올 수 있는 음표의 숫자가 제한되는 것이다. 만약 4분의 4박자라고 한다면 한 마디안에는 4분음표가 4개 오거나 8분음표가 8개밖에 올 수 없다. 더우기 첫째와 세째 4분음표 자리에는 강세가 오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강박이 오는 자리에는 중요한 단어가 와야한다.

 한국어를 예로 들면 명사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와야지 조사나 접속사같은 기능어가 오면 안되는 것이다. 라틴어의 악센트에 정통했던 모차르트나 기존의 성가에 아름다운 번역을 붙이는 작사가들은 어느 정도 예외일 수 있겠으나 근본적으로 이러한 제약조건하에서 기도문은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니 숨표정도만 표시해 놓은 그레고리오 성가야 말로 음악보다는 가사가 먼저임을 확실히 해주는 장르가 되는 것이다.

 중세기 후반에 사람들은 모두가 동일한 가락을 부르는 제창에서 벗어나서 노틀담 성당을 중심으로 화음을 시도하였고 이것이 확장 발전되는 과정에서 마디라는 제약이 중요한 요소로 따라붙었다. 제각각의 파트를 하나로 묶는 공통의 척도를 제공한 것이다. 이때부터 가사는 점점 그 위상을 음악의 아름다움 속에 잃어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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