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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자존심을 버릴 수 있는 '자존심'

구혜영/사회부 기자

최근 이상하리만큼 자주 '자존심'이란 단어를 접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듣다 보니, 이 단어가 이토록 쉬운(?) 말이었는지 곰곰이 따져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귀에 자주 들리는 해당어의 문장형은 "완전 (자)존심 상했어" "넌 자존심도 없냐?"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 등. 간단히 분류해보면 타인의 지적에 분한 마음을 담아 자신의 상처를 드러낼 때나 타인을 제3자와 비교하며 깎아내릴 때, 자신 또는 타인의 뜻을 굽힐 때에 이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자존심의 사전적 의미가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임을 생각해볼 때, 타인의 한 마디에 좌지우지되는 그 마음이 이 거창한 이름을 달 수 있는지 의문이다. 동시에, 한 사람의 가치를 부정하면서까지 비아냥거려야 할 건수가 그리 많은지도 의문이다.

지난 2월 말, 일본군 위안부 역사에 대해 자존심을 논하는 일본계 할아버지 2명을 만났다.

한 명은 '평화의 소녀상'을 세웠다는 이유로 글렌데일 시를 고소한 일본단체(GAHT)의 대표이고, 다른 한 명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8살의 어린 나이에 콜로라도 수용소에 끌려갔던 일본계 2세다. 각각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만났지만 그들의 상반된 의견에는 자존심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그리고 80세, 세계 2차대전을 몸으로 겪은 동갑내기 두 남자의 자존심은 급이 달랐다.

두 사람 중 먼저 만난 이는 GAHT의 메라 코이치(80) 대표였다. 그는 "위안부는 일본군 장교보다 더 높은 급여를 받았다. 위안부는 섹스 파트너의 또 다른 이름"이라며 "날조된 역사에 상처입은 일본의 자존심을 회복시키겠다"고 소송배경을 밝혔다. 이는 "군인들의 휴식을 위해 위안부 제도가 필요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만한 일"이라는 발언으로 국제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하시모토 도루 일본 유신회 대표와 매우 닮아있다. 하시모토 대표도 일본인의 자존심과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말로 망언 릴레이를 시작한 바 있다.

이 말을 전해들은 필 시라쿠니(80)씨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일본계로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글렌데일 시의회를 찾아왔다는 그는 한참 동안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일본을 위한다는 사람들이 일본의 자존심에 먹칠을 하고 있다. 어째서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자존심 상할 일인지 모르겠다"며 "'죄송하다'는 한 마디에 무너질 자존심은 자존심도 아니다"고 말했다.

가끔 "난 자존심이 세서…그런 거 못 해"라는 사람을 만난다. 자존심이 세서, 자존심이 상할까봐 그 일을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그 일을 못할 만큼, 자존심이 약한 게 아닐까? 또 "자존심이 상해서…꼭 복수할 거야"라는 사람도 종종 본다. 그 사람은 자신의 자존심이 '앙갚음'을 결정해야할 만큼 낮다는 게 아닐까?

자존심(Pride)을 주제로 칼럼을 쓰자고 결정한 후,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프라우드(Proud.자랑스러운)'였다.

결국, 자존심이라는 것은 자랑스러운, 자랑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 무언가다. 누군가 정해놓은 어설픈 자존심 따윈 우습게 버릴 수 있는 자존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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