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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북한이 최고의 은퇴지라고?

[LA중앙일보] 발행 2014/03/11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4/03/10 20:55

이종호/논설위원

#. "북한에 가서 살면 어떨까?" 통일운동에 관심이 많은 한 친구가 불쑥 꺼낸 얘기다.

"갑자기 웬 북한?"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더니 이렇게 말한다. "지금 말고 나중에, 통일이 되면 말이야. 아무래도 10년쯤 뒤에는 통일이 될 것 같거든. 생각해 보라고. 북한같이 오염 덜 된 청정지역도 없을 거야. 거기다 우리말 통하지, 물가도 엄청나게 쌀 거고. 같은 민족을 위해서 무엇인가 보람된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미주 한인들이 노후에 가서 살기에 그만한 곳도 없을 것 같지 않아?"

신선했다. 은퇴지로 북한을 생각해 내다니. 정말 그리 된다면 이야말로 '통일 대박'이다. 하지만 여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동의할 사람이 많을 것 같진 않았다. 지금의 북한 사정을 뻔히 아는데 아무리 통일 이후라 해도 말이다.

이 친구 말고도 요즘 주변엔 노후를 어디서 보내면 좋을지 고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느냐, 미국에서 그냥 사느냐 하는 것도 빠지지 않는 메뉴다. 이게 다 '역이민 뉴스' 탓이다. 이민 오는 사람은 갈수록 줄고, 돌아가는 사람은 가파르게 늘어난다는 뉴스가 사흘이 멀다 하고 쏟아지니 멀쩡히 잘 있던 사람까지 들썩거릴밖에.

하지만 돌아간들 내가 그리던 한국은 아닐 것이다. 낯설어진 제도, 환경, 사람들. 그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또 분투하며 산단 말인가. 차라리 물가 싸고 환경 좋은 제 3의 장소가 나을지 모른다. 얼마 전 만난 한 지인도 그런 말을 했다. 멕시코에 사업처를 일구고 1년에 반쯤은 왔다 갔다 하면서 사는 분이다.

"지도를 펴놓고 남북회귀선 사이에 있는 나라들을 유심히 살펴보라고. 미국 생활비의 거의 절반 이하로도 여유롭게 살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어." 정말 그런가 귀를 쫑긋했더니 무슨 비밀이라도 일러주듯 말을 잇는다. "잘 들어봐. 코스타리카는 너무 올랐어. 대신 에콰도르, 니카라과, 파나마 같은 곳이 괜찮아. 멕시코도 나쁘지 않고. 생각보다 안전하고 편의시설도 꽤 잘 돼있지. 이미 미국 노인들은 많이들 가서 살고 있어."

솔깃하긴 했다. 그래도 막상 한인들이 가서 살기엔 주저되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다. 지금이 70~80년대 호기롭게, 혹은 비장하게 태평양을 건너던 그런 시절, 그런 나이는 아니니까.

#. 뉴욕서 살다 LA로 이사 온 탓인지 어디가 좋은가라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한 1~2년은 '잘 모르겠다'였다. 하지만 지금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LA라고 대답한다. 무엇보다 날씨가 좋아서다. 뉴욕은 겨울이 거의 다섯 달이다. 너무 춥다. 여름엔 또 습하고 덥다. 그런 곳에 비하면 남가주는 천국이다.

한인커뮤니티도 너무 고맙다. 한국말 통하고 친구들 많고 한국 음식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곳, 한국 말고 이만한 데는 없다. 그러나 주저없이 LA가 좋다고 답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몸에 밴 익숙함 때문이다. 익숙하다는 것은 편안하다는 말이다. 사람 사는데 편한 것만큼 중요한 요건은 없다. 뉴욕 살 때도 그랬다. 살다보니 익숙해졌고, 익숙하니 편했기에 늘 뉴욕만한 데가 없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나이가 들면 용기와 도전정신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어디서 살면 좋을까 고민하고 결행하는 사람은 그래서 여전히 청춘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청춘일까. 미국 은퇴자의 80% 이상은 그냥 자기가 살던 곳에서 노후를 보낸다고 한다. 돈 때문만이 아니다. 젊은 날의 땀과 추억이 깃든 곳, 가족 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기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역이민, 신나는 일일 수 있다. 제3국도 좋고 '은퇴지 북한'은 더 가슴 뛰는 일이다. 하지만 웬만큼 나이가 들면 순리(順理)가 현명함일 때가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은퇴지는 지금 사는 이곳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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