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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플레이스] '메멘토 모리'의 삶

박용필/논설고문

아내의 죽음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레너드 셸비(가이 피어스). 항상 적고, 중요한 것은 메모를 해야한다. 심지어 자신의 몸에 문신까지 새겨 넣었다. 차를 몰고 가던 중 그는 갑자기 생각난 듯 주억거린다. "그런데…내가 어디 있었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 거의 끝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

두 시간의 러닝타임을 달려온 영화의 종착지인 마지막 대사는 영화 전체를 떠올리게 하는 열쇠다. "내가 어디 있었지"는 할리우드 최고의 명대사 중 하나로 꼽히며 영화의 제목 만큼이나 회자돼 왔다.

영화는 감독의 동생 조나 놀란이 쓴 소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바탕으로 했다. 라틴말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중세기 수도사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메멘토 모리'라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늘 죽음을 기억하는 삶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 보는 계기로 삼았다는 것이다.

말의 유래는 이렇다. 옛 로마의 어느 장군이 개선 퍼레이드 때 인파의 환호가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이다. "오늘은 내게 최고의 날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죽음을 맞게 된다." 승리에 한껏 취한 나머지 교만해질 것을 우려해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채찍보다 더 무서운 담금질을 했다고 할까.



이후 '메멘토 모리'는 기독교에 전파돼 심판과 부활, 영혼의 구원 등과 관련해 쓰임새가 넓어졌다. 오늘에 와서는 영화는 물론 각종 출판물에 인용되는 등 교훈적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더욱이 넥타이 브랜드로도 인기가 높다니 참으로 많은 것을 곱씹게 해준다.

식민지 시절, 미국 청교도들 역시 '메멘토 모리'를 신앙의 좌표이자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다소 섬뜩하게 들리겠지만 청교도들은 해골을 가까이 두고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지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7세기의 청교도 지도자 토머스 스미스가 남긴 자화상을 보면 그 당시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대영제국의 해군 함장으로 숱한 공을 세웠으나 부와 명성을 멀리한 채 식민지에 정착, 청빈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인 스미스는 시 한 수를 쓰고는 그 위에 해골을 그렸다. 요즘 같으면 광신자 취급받기 십상이지만 그 때엔 올곧은 신앙의 표본으로 꼽혔다니 대부분 성경 말씀대로 살지 않았나 싶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늘 기억하라'는. 그가 쓴 시는 욕망이 얼마나 헛된지 꾸짖는 듯해 옷깃을 여미게 된다. "왜, 왜 나는 이 사악한 세상에 연연해 하나/ 욕망은 헛되고 헛된 것을/ 이제 작별을 고해야겠지/ 진실을 멀리하는 이 세상/ 나는 결코 미련이 없네/ 영원(한 삶)이 나를 이끌어주고/ 내 가슴은 어떤 힘도 누를 수 없는 신앙심이 있지/ 나에게 은총과 영광의 왕관을 씌워주게."

예수의 고난과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는 사순시기다. 키워드가 바로 '(예수의) 죽음을 기억하라'다. 전세계 교회는 이 기간 참회와 희생, 그리고 자선을 하며 이웃사랑을 실천한다. 세상 일에 바빠 교회를 멀리한 사람들도 영화 대사처럼 "내가 그동안 어디 있었지?"하며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요즈음이다.

교회가 아니어도 나바호 인디언의 '메멘토 모리'는 그 의미가 무겁게 느껴진다.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너는 울었지만 세상은 기뻐했으니, 네가 죽을 때 세상은 울어도 너는 기뻐할 수 있도록 그런 삶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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