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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노생과 베개

이기준 시카고 중앙일보 논설위원

중국 당나라 현종때 산동의 한단이라는 빈촌에 노생(盧生)이라는 젊은이가 살았다.

그는 아무리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한탄을 하며 주막에서 졸고 있었다.

이 때 선인(仙仁) 여옹(呂翁)이 도자기로 만든 신침(神枕)의 베개를 빌려준다. 이 베개를 베고 잠든 노생은 명문 대가의 아릿다운 규수와 결혼하고 과거에도 급제한다.

재상까지 돼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어느 날 역적의 누명을 쓰고 유배를 간다.



목숨까지 위태로와진 그는 옛날 고향에서 가난하게 살 때가 오히려 좋았다고 후회한다.

그 뒤 다행히 모함이 풀려 재상에 복직한 후 전보다 더 행복하게 살다가 80세로 생을 마치는 날 잠에서 깼다.

옆에는 선인이 그대로 앉아 있고 주막집 주모가 밥을 짓고 있었는데 아직 뜸도 들지 않았을 정도의 짧은 꿈이었다.

선인 여옹은 노생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생은 다 그런 것이라네” 라고 한다.

노생은 신침의 베개로 모든 영고성쇠(榮枯盛衰) 속에서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을 깨우쳐준 여옹에게 감사한다.

이 이야기는 중국의 전기작가 심기제(沈旣濟)가 쓴 침중기(枕中記)중 일화다.

베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이 편안한 잠을 자는 데 필수적인 침구다.

베개는 과거 원시시절 돌베개가 주로 쓰였다.

가장 오래된 돌베개라면 현재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야곱의 돌베개일 것이다.

구약성서 창세기는 그가 하늘의 계시를 받아 이 돌을 베고 잘 때 천사들이 하늘에서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이 돌은 BC 5세기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로 옮겨졌으나 1296년 영국의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정복, 영국으로 가져갔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베개는 충남 공주의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목제 두침(頭枕)이다. 높이 33.7cm, 길이 44cm, 너비 12cm로 사다리꼴 통나무에 봉황·용·화형문에 금박으로 장식, 지난 1974년 국보 162호로 지정됐다.

우리 선조들은 돌베개부터 고려·조선시대는 재질에 따라 목침·퇴침·수침·구봉침·면침·수복침·면화침·곡침·도침 등 여러 가지로 제조했다. 그 뒤 삼베나 광목 주머니에 쌀겨·메밀껍질·톱밥 등이나 콩 등의 곡식을 넣어 만든 것이 사용됐다.

1574년 선조 7년에 급제한 조선 제일의 명의 허준의 동의보감에는 신침(神枕)이 나온다.

잣나무 재질 속에 32종의 약제를 조제해 넣어 만들었다고 한다. 이를 베고 자면 약효로 체내 병균이 소멸되고 기가 왕성해진다고 했다.

사용 1백일이면 얼굴에 광택, 1년이면 몸이 향기로와지며 4년이면 모발이 세지지 않고 치아가 단단해지며 눈과 귀가 밝아진다고 썼다.

오늘날 맥반석·씨앗·소금·참숯·허브·음이온·바이오·메모리·향림 장치 베개 등은 이를 본뜬 것이다. 베개는 우선 소재·크기·쿠션·향기 등이 자신의 체격과 취향에 맞아야 한다. 그래야 가장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다.

통기성과 흡수성이 좋아야 함은 물론이다. 의학자들이 연구한 베개의 높이는 누웠을 때 6~8cm 정도다.

이 높이가 머리·목척추·허리척추 등이 일직선이 돼 피로도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높은 베개로 편안히 잔다는 고사성어 고침안면(高枕安眠)은 현대 건강의학에서는 맞지 않는 말이 된지 오래다.

베개는 침실에서 남녀간 운우의 정을 나누는 데도 가장 절실( )하게 이용될 때가 많다.

그런가 하면 한 많은 여인네의 눈물받이 역할도 해왔다. 오로지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과거 우리 여인네들의 남모르게 흘렸던 베갯닢 눈물은 언제 들어도 마음이 아프다.

베개는 흔히 간접 흉기로도 이용되고 있다. 스파이 세계에서 미인계로 적을 살해할 때 독약이나 무기를 감추어두는 곳으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최근 청와대 Y모 제1부속실장이 업자로부터 받은 향응과 함께 노대통령 상납용으로 받았다고 하는 국화베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는 토종국화인 감국 1천여송이에 세라믹을 혼합한 것으로 은은한 국화향에 숙면(熟眠)에 좋고 고혈압·두통 등에 효능이 큰 것으로 광고하고 있다.

노생과 여옹의 자기 베개, 노대통령과 신세망친 Y모 실장의 국화베개, 어딘가 참으로 묘한 구석이 연상되는 것 같다.

여옹의 말처럼 ‘인생은 다 그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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