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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이민자의 '봄 언덕'

김용현/한민족평화연구소장

겨우내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던 캘리포니아에 몇 차례 폭우가 지나가자 조금은 해갈이 되었는지 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지난 주에는 많은 사람들이 LA에서 북쪽으로 220마일 떨어진 프레즈노에 올라가 과수원 단지에서 벌어진 아몬드와 체리, 복숭아 등 아름다운 꽃축제를 즐기고 왔다고 한다.

유난히 겨울이 길었던 한국에는 봄이 어디쯤 왔는지 궁금하다. 경상남도 통영 장사도를 비롯한 해상국립공원에 동백꽃은 얼마나 빨갛게 물들었으며 지난해 가을 찾아갔던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도에 있는 서편제 길의 유채꽃은 벌써 노란 꽃봉우리를 내밀고 있는지.

오는 봄을 생각하다 문득 어릴 적 부르던 동요 하나가 입안에 맴돈다. '연못가에 새로 핀 버들잎을 따서요 /우표 한 장 붙여서 강남으로 보내면 / 작년에 간 제비가 푸른 편지 보고요 /대한 봄이 그리워 다시 찾아옵니다.'



'봄편지'라는 노래인데 원로시인 허영자 선생의 수필집을 읽던 중 당시 이 노래의 작사자가 어두컴컴한 토담집에서 사는 무명의 곱추소년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는 노래가 더 아름답고 정이 간다. 얼마나 봄이 간절했으면 버들잎에 우표를 붙여 강남으로 보내고 싶었을까.

3월은 희망이다. 토담집 소년에게도 봄은 그렇게 환희였듯이 이 봄이 가난한 사람에게는 풍요의 날들이 되기를 바란다. 병마와 싸우고 있는 내 가까운 이웃들에게는 이 봄이 용기와 승리의 계절이기를, 훌쩍 가버린 사람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이들에게는 용서와 치유의 봄이 되기를 바란다.

3월은 민족의 아픔을 돌아보는 달이다. 1919 년에 있었던 3·1운동은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가장 큰 민족해방운동이었다. 그러나 그 뒤로 일제의 찬탈행위는 계속되었고 광복이 된지 70년이 돼가는 오늘까지도 일본의 오만방자한 과거사 농락으로 국내외 동포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게 다 우리가 일찍이 일제에 협력한 사람들을 정죄하지 못한 당연한 업보다. 우리가 안 했으면서 남에게만 과거사 청산을 하라니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최근의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듯이 열강에 끼어있는 민족은 스스로 살아가려는 특단의 각오없이는 고달픈 행보를 면할 길이 없다.

방송국에 다니던 1969년 봄 나는 시인 한하운 선생을 취재하러 경기도 부평에 내려간 적이 있었다. 양철 지붕 아래 허름한 시골집 툇마루에 앉아 선생의 슬픈 생애를 이야기 나눈 끝에 시 몇 수를 그분의 육성으로 담아 올 수가 있었다. '보리피리'를 빼놓지 않은 것은 물론이었다.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필 닐니리 //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필 닐니리 (중략)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 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필 닐니리'

숨이 차오르는 가파른 언덕길을 '필 닐니리 필 닐니리' 그래도 참을성 있게 올라가노라면 거기 '봄 언덕'과 '꽃 청산'이 기다리고 있을까. '보리피리'에서 힘에 겹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걸어가는 우리 이민자들과 우리 민족의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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