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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문학] 침묵 - 박경자

‘겨울에야 소나무가 더욱 푸르름을 본다’는 논어의 말씀처럼, 자연속의 나무들은 침묵의 겨울이 키운다. 겨울을 사는 빈 나뭇가지는 죽은듯 바위처럼 말이 없다. 그러나 냉혹한 엄동 설한에도, 나무뿌리는 땅 속에서 뜨거운 불을 지펴 생명을 키운다. 깊은 산 계곡마다 산 메아리, 새소리, 바람 소리, 소리없는 소리, 묵언의 침묵이 겨울산에 꽃도 나무도 키운다. 산인듯, 바위인듯 죽었던 고목에 핀 매화 한송이, 옛 선비님 첫사랑, 님찾아 다시 찾아오는 이 봄, 얼마나 찬란한 그리움이던가.돌산 바윗틈 사이에 이름없는 꽃들이 봄을 노래하는 자연속의 신비의 그 생명들은, 침묵이 키운 지고의 아름다움들이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사람만이 침묵을 잃어버렸다. 눈만 뜨면 기계 속에, 수많은 정보 속에 살면서 내면의 그윽한 생명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인간은 하루에 6만가지 이상의 생각을 하며 산다고한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똑같은 생각을 하며 살 것이다. 사람의 가슴에는 침묵이 들어앉을 자리가 없다.

어느 날 대학 선배와 함께한 자리에서 세상의 백과사전처럼 모르는 것이 없는 끝없는 강연을 들으며,오랜만에 그리움안고 찿아나선 내 마음이 왜 그리 수선스러웠는지 모른다. 대학 선배는 “살아갈 세상 대비 잘하라, 그것도 글이라 쓰느냐고”고 질책하며, 써놓고도 부족함 뿐인 내 글에 찬물을 끼엊는다. 내가 ‘당신이 쓰면 어떻냐’고 묻자 선배는 “누가 글 같은것을 쓰는 바보인줄 아느냐”고 큰소리 친다. 물론 좋은 충고였지만 알고도 모른척하라는 옛말은 참으로 진리이다. 침묵, 무수한 웅변보다 얼마나 아름다운 소리 없는 대화인가.

어는 날 스승을 찿는 제자의 끝없는 자기 웅변을 듣다 못해 그 스승은 “네 더러운 발을 내 입속에 넣으려하느냐”고 고함을 쳤다고 한다. 현대인의 비극은 홀로 있지 못함이요, 잃어버린 마음의 평화이다. 산다는 것에 족쇄를 묶인 현실을 피할수 없지만 우린 가끔 홀로됨을 찾아 길을 떠나야 산다. 내면의 침묵을 키우지 못함이 노이로제같은 정신착란을 일르킨다. 기계 문명의 이기속에 인간이 격어야하는 무서운 질병이기도하다.



지난주 한 어머니가 자동차에 세 아이를 태우고 플로리다 데이토나 비치의 바닷물에 뛰어들었다는 충격적 뉴스를 보았다. 다행히 세 아이와 어머니 모두 무사히 구조됐지만, 알고보니 어머니가 정신착란이었다고 한다.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수많은 총기난사 사건의 상당수가 정신착란에 따른 비극이었다. 그 옛날, 우리가 어린 시절에는 없었던 무서운 사건들이 이처럼 발생하는데는 수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도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마음을 아름답게 유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지…. 자녀를 키운 부모는 알 것이다. 마음은 침묵 속에 비워져야 듣고 받아들인다. 기원 5세기 ‘피카고라스’라는 시인은 “침묵을 배운다는 것은/너 자신이 되는 것/홀로 조용한 마음으로/듣고 받아들이라”라고 노래했다. 호수에 수많은 파문이 일어날 때는 심연의 깊은 호수를 볼수없다. 침묵의 순간순간이 우리 영혼을 깊고 높은 곳으로 인도하는 ‘하나됨’이다. 그림속에도 그려지지 않는 여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동양화를 그려본 사람은 안다.

언제부턴가 세상은 너무 시끄러워졌다. 모두가 천재요, 모르는 것이 없고, 자칭 스승이요 멘토라 한다.부족함이 없는 세상에 우린 왜 부족함뿐인지 모른다. 비움, 그리고 침묵, 얼마나 아름다운 웅변인가.

나같은 촌부는 돌산에서 배운 침묵이 평생의 교육보다 승함을 배운다. 더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살지못한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침묵의 스승 돌산 앞에 설 때마다 시끄럽고 못난 자신을 되돌아 본다. 깊은 산 그 아름다움은 침묵 때문이요. 눈쌓인 설경의 침묵, 바다의 침묵, 하늘의 침묵, 땅의 침묵, 꽃들의 침묵, 영원한 침묵의 아름다움이다. 만물의 영장이란 지구별 사람들만이 마음 속 깊은 곳에 침묵을 잃어버리고 살고있지않는지…. 소리없이 찿아온 애틀란타의 봄, 그 소리없는 침묵에 마음 담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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