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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자녀사랑

[LA중앙일보] 발행 2003/08/28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03/08/27 17:21

이기준 시카고중앙일보 논설위원

1859년 개교한 미국 동부의 웰튼 고등학교는 전통·명예·규율·최고만을 지향하는 명문학교다. 재학생 닐은 정상급 우수 성적을 자랑하는 모범생이다. 닐은 어렸을 적부터 부친 존에 의해 엘리트식 주입교육으로 자라왔다. 부친의 소망은 그가 오로지 의과대학에 진학해 장래 의사가 되는 것 뿐이었다.

그러나 닐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희망은 연극배우였다. 그의 친구들 역시 자신의 개성과 소질에 관계없이 의사나 변호사 등을 강요하는 분위기에서 숨이 막힐 것 같다. 이들의 감성을 중시해주는 키팅 선생의 부임은 구세주였다.

키팅 선생의 가르침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기에 가질 수 있는 꿈을 마음껏 펼쳐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죽은 시인들 사회’ 라는 서클을 부활시켜 학교 뒷산 동굴에 모여 시귀를 읊조리며 장래 나름대로의 꿈을 키운다. 닐은 자신이 원하던 극단의 오디션에 합격해 주역을 따낸다. 이 사실에 노발대발한 부친 존은 닐의 군사학교 전학을 결정해버린다. 너무나도 엄격한 부친에 절망한 닐, 그는 자살이라는 비극적 종말을 택하고 만다.

이는 지난 1989년 개봉된 ‘죽은 시인들 사회(Dead Poets Society)’ 라는 영화의 줄거리다. 자신들의 욕망이나 대리만족을 위해 자녀들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하려는 기성세대들의 획일적 이기심이 진득하게 묻어 있다.

최근 한인사회복지회가 한인 1.5세·2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이같은 경향이 도사리고 있는 듯하다. 일부 부모의 기대와 본인 희망의 갭이 커 이에 따른 갈등이 큰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우리 2세들이 주류사회에서 받는 인종편견적 차별에 따른 스트레스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다가 이처럼 자녀의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부모의 과도한 기대와 요구는 자칫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인생은 왕복차표를 발행하지 않는다. 한번 여행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는 로맹 롤랑의 말을 어린 시절부터 깨우쳐주기를 원한다. 절대로 맞는 말이다.

제 자식 사랑하지 않고 잘되기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속칭 상류사회만을 구가해온 부모라면 행여 못난 자식 때문에 체면과 남은 인생이 구겨지는 것은 치욕이다. 자존심이 크게 손상되는 일이다. 이래서 문제는 싹튼다.

반대로 여봐란 듯이 살아오지 못한 부모라면 자식이라도 명품( )으로 만들어 한을 풀어보자는 대리만족 심리가 크게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자녀 교육열이 세계 최고인 우리 한국인들에게서 더하다. 자녀가 최고의 명문대학에 진학해서 최고의 전문직 사회인이 보장됐을 때 느끼는 부모의 카타르시스야 이루 말할 수 있으랴. 틀림없는 이야기다. 자녀를 자신의 분신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최근 한 인터넷 업체가 30∼50대 주부 8백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삶의 보람’을 묻는 질문에 80.5%가 ‘자식’으로 응답했다. ‘남편’ 으로 응답한 사람은 55%에 불과했다(복수응답).

그러나 이는 자칫 과도한 욕심으로 자식에 대한 잘못된 사랑으로 흐르기 쉽다. 지나친 소유욕과 과잉보호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종속적인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식의 소질이나 개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오로지 부모의 취향에 따라야 하고 복종해야 한다. 이에 제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부모 역시 큰 스트레스 뿐만 아니라 커다란 좌절감과 절망감에 빠지고 만다.

자녀 측에서는 어떨까. 그런 상태가 계속되면 자신만의 개성과 독창성을 잃을 것은 너무나도 뻔하다.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크게 자신감을 상실하고 만다.

또 자신이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켜드릴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받는 좌절감은 얼마나 클까. 이런 자녀들이 생일 축하 파티에서 ‘해피버스데이 투 유∼’ 하는 가사 대신 ‘왜 태어 났니∼’ 로 바꿔부르는 일은 오래된 일이다.

교육의 기초는 정서·심리적 안정을 주는 것이다. 우리 한인 사회에서도 자녀들의 정신세계를 해방시켜줄 수 있는 키팅선생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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