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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음악 산책] 공대생과 고전음악

 고전음악을 많이 듣는 이들중에는 공대쪽, 특히 대학원생의 비율이 의외로 많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언뜻 음향기기와 같은 기계를 다루는데 아무래도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보다 본질적으로 다음의 네가지 이유를 제시해본다.

 첫번째로 노동요론. 음악은 노동요이다! 과중한 프로젝트의 스트레스에서 빠져 나올 수있는 유일한 낙은 음악이다 (그러나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동료들에게는 스트레스를 더 쌓이게 할 수도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통해 쌓이는 과격성을 온건성으로 전이시키는 것도 음악이다. 이는 음악을 통한 대리분출을 통해서이다. 음악에서도 갈등의 구조가 존재한다. 그것들은 시간의 흐름속에 음악이 연주됨에 따라 하나 둘씩 쌓이고 끝내는 폭발하게 된다. 현실에서는 실현이 힘든 폭발도 음악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분노의 첨두에서 팀파니는 강도 높은 진동을 발하며 베르디의 디에스 이레는 현실적 분노를 대리 표출케해준다. 얼마나 무결하고 뒷끝이 깨끗한 해소법인가? 음주나 흡연 보다 건강하고 깨끗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로 정착론. 원시인의 세계에서, 채집문화에서 농경문화로 바뀌면서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가?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유추되는 공대생이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유달리 많은 시간을 책상에 앉아 연구와 실험에 매달려야하는 공대생의 경우 음악을 들음으로해서 보다 오랜 기간의 책상 정착생활에 활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세번째로 동질성론. 인간이 만든 최고의 인위적인 산물이 무엇인가? 나는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복잡한 후가가 얽히고 설혀 우리 맘에 도달한 후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이 감동에 젖어본 이는 왜 음악이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인공적인 피조물인지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공학이란 무엇인가? 자연과학의 원리를 경제성에 입각하여 현실에 도입하는 학문이다. 즉 제 아무리 좋은 과학상의 이론이라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경제적 타당성이 없으면 공학적으로는 가치가 없다. 그렇다면 음악을 공학적인 측면에서 분석해보자. 피타고라스 등의 연구자들이 비례의 물리학을 적용하여 만들어낸 인위적인 파동과 그것이 여러사람의 마음에 도달하여 일으키는 심리적 화학반응에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세상에 음악보다 더 공학적인 가치를 잘 표현하는 인위적인 산물이 있을까?



 마지막으로 전인격론. 공대생에게 붙여지는 형용사중에는 한때 ‘단·무·과’라는 것이 있었다 (단순, 무식, 과격의 약자다). 그러나 복잡한 물리적 현상계를 표현하기 위해 원인요소를 가급적 단순화 시켜야 하는 것이 공학자의 임무다. 그래서 모든 현상에 대해 f라는 함수로 투영하여 단순화시키는데 많은 시간을 쏟다보니 자연히 마음도 그것을 닮아 단순해져 갈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일에 시간이 많이 빼앗겨 사회/문화적 측면을 소홀히 하게되니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리고 소위 수치라는 것이 소숫점 몇 째자리까지 (혹은 유효숫자측면에서) 정확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답에 대한 부정확성이나 융통성이 용납되지않고 오로지 정확히 딱 떨어짐의 결과 만이 요구되다보니 오차라는 괴리에 대한 과격함도 단조적으로 증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공학도도 전인성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이다. 다양한 사상과 문화를 접하고 따뜻한 감정을 보듬으며 살아 가고픈 생각 간절하나 환경이 허락치 않아 ‘좌뇌적 인간’으로 전락한 가엾은 부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단·무·과’의 폐해를 자각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무엇을 찾다보니 결국 선택하게 되는 것의 하나가 음악인 것이다.

 수학과 음악 공히 논리적으로 전개되지만 음악에서는 수학이 제공하지 못하는 루바토와 인프로비제이션을 제공한다. 루바토나 인프로비제이션을 통한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통해 좀 더 다양하고 유연한 사고가 가능케 되며 ‘칼같은 정확성’에 대해 완곡성이 계발되기 시작한다.

 서양의 격언중에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Ars longa, vitabrevis)”라는 말이 있다. 본디 로마의 철학자였던 루치우스 세네카가 한 말로 여기서의 예술(ars)은 요즘에 흔히 생각하는 예술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기술을 의미하며 특별히 의학을 지칭한 것인데 당대에는 의학도 과학기술에 포함되던 시절이라 이렇게 이야기 한 것이다. 해석해보면 인생의 길이에 비해 의학적으로 배워야할 지식이 너무도 많음을 탄식한 것이다.

 어쩌면 아르스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두가지의 의미, 기술과 예술은 우리의 짧은 인생길에 상보적인 두가지 필수 요소라 볼 수 있다. 윤택한 물질적 삶을 위해 기술이 필요하고, 풍요로운 정신적 삶을 위해 예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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