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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규제 천국' 미국은 왜 조용할까

이종호/논설위원

암세포도 생명이니 내 맘대로 죽일 수는 없다며 암 치료를 거부한 사람이 있었다. 드라마 속 황당한 이야기다. 하지만 상식적으로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반드시 없애버려야 할 대상이 암세포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규제를 암 덩어리에 비유해 화제가 됐다. 청와대 주도의 '규제개혁 끝장토론'은 그런 암 덩어리 성토장이었다.

미주 한인 입장에서도 공감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공인인증서니 액티브X니 하는 것들로 인해 온라인 결제에 여러 번 불편을 겪어봤기 때문이다. 해외동포가 한국 가서 취업할 때 겪어야 하는 불편도 그렇다. 당장 이곳 저곳 신고하는 데만 보름 이상이 걸릴 정도로 번잡하단다. 퇴사할 때도 고용지원센터, 출입국 관리사무소, 4대 보험 담당기관 등에 또 신고를 해야 한다니 오죽할까.

일상의 삶을 옭아매고, 정상적인 비즈니스 활동을 가로막고, 창조적 도전 의욕을 꺾는 규제라면 마땅히 혁파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국민적 화두가 되어버린 '규제 망국론'을 보면서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면도 없지는 않다. 원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규제일 텐데 왜 이렇게 국민의 공적(公敵)이 되었을까.

인터넷이 생겼다. 너도나도 자유롭게 이용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무책임한 글과 사진이 난무하고 피해자도 속출한다. 결국 제한이 가해진다. 그것이 규제다. 멀쩡하던 백화점이, 다리가, 폭설을 못 이긴 체육관이 무너졌다. 애꿎은 희생이 줄을 잇는다. 건축기준 강화하라, 관리 감독자는 무엇했느냐는 여론이 비등해진다. 그때 또 규제가 만들어진다. 이것이 규제의 시원(始原)이다. 규제가 일부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밥그릇 노릇을 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미국의 경우를 생각해본다. 아무리 한국에 규제가 많다한들 미국 따라오려면 한참 먼 것 같아서다. 처음 미국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도 술, 담배, 청소년, 여성, 장애인, 자연보호 등과 관련된 생활 속 규제가 왜 그렇게 많은가 하는 것이었다. 비즈니스 규제도 마찬가지다. 건축업자가 집을 하나 짓는다고 하자. 하다못해 못 하나, 벽돌 하나에도 맞춰야 할 코드가 있다. 새로 가게를 하나 열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소방, 수도, 전기, 하수, 조경 등 어느 하나라도 규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다음 공사를 진행할 수가 없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덜컥 일을 벌였다가 1년이 넘도록 속만 끓이다가 두 손 들었다는 얘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고 미국이 문제가 있는가. 아니다. 오히려 꼼꼼한 규제와 규정들로 인해 더 잘 돌아가는 곳이 미국 사회다. 다수를 위해 소수의 불편함을 강제해 놓은 것이 규제요 규정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따르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으로 한국이 더 좋은 나라가 된다는 것, 두 손 들어 환영이다. 그러나 멀쩡한 규제조차 우습게 여기는 마음 자세부터 먼저 바뀌지 않으면 힘들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규제라도 내가 불편하면 없애야 할 암 덩어리로 치부해 버리는 분위기에선 어떤 개혁도 공염불이 될 뿐이다.

필요해서 만든 규제도 시간이 흐르면 효력이 다 할 수 있다. 정부도 그런 것은 풀어야 한다. 하지만 불필요한 규제와 필요한 규제를 살펴 헤아릴 줄은 알아야 한다. 그것이 개혁 성공의 열쇠다.

규제개혁, 하려면 제대로 해야한다. 무엇보다 개혁의 기준이 소수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닌 다수의 이익과 안녕이어야 한다. 지금 조금 불편하다고, 당장 눈앞에 손해가 된다고 너도 나도 엄살떨며 부리는 투정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규제개혁 하자면서 제도 무시, 법규 경시, 떼쓰면 된다는 세(勢) 과시 집단들과의 야합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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