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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음악 산책]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만약 세계적인 지휘자의 이름을 하나 말해보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해보자. 과연 누구의 이름을 댈 수 있을까? 여러사람이 거론될 수 있겠지만 그중에 ‘카라얀’이라는 이름이 많이 등장하리라 생각한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1908년 모차르트가 태어나고 활동했던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에서 출생해 지휘자로 출세가도를 달린 인물이다. 이름에 폰(von)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으로 미루어 귀족출신임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피아니스트를 지망, 빈에서 피아노 공부를 하였으나 뒤에 스승 호프만의 권유로 샬크에게 사사하여 지휘를 배웠다.

 토스카니니가 바이로이트에 와서 탄호이저를 연주한다는 소식에 잘츠부르크로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250마일 이상되는 거리를 달려올 정도로 지휘에 열정을 가졌던 그는 1956년부터 1989년까지 30년이상 베를린 필을 맡아 지휘세계의 황제로 군림하였다. 눈을 지긋이 감고 지휘봉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이미 박자지휘의 수준을 벗어나 그 이상의 표현과 감흥을 창출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로 잰듯한 정확함을 잃지 않는다.

 카라얀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둘로 갈린다. 풍부한 레퍼토리와 대중성 그리고 정교함으로 마이스트로의 반열에 올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의 상업적인 마인드나 나치에 협력했던 전력등을 들어 못마땅해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가 명성을 얻게 된 이유중 하나는 미디어의 영향력에 적절히 편승했기 때문이다. EMI의 명 프로듀서 월터 레그를 만나 수많은 LP 디스크를 내었으며 그것은 컴팩트 디스크까지도 이어졌다. 특히 요즘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매체인 컴팩트 디스크가 74분의 길이를 가지게 된 것은 그의 입김때문이었다. 74분이란 시간은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한장의 CD에 담을 수 있는 길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이었을까? 그것은 자신의 선배 지휘자였던 푸르트뱅글러의 명 레퍼토리였기 때문이다. 카라얀은 독일 아헨지방의 음악감독이 되기위해 나치당에 입당하여 활동하였는데 이와는 반대로 나치에 비협조적이었던 푸르트뱅글러와는 경쟁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앙금이 카라얀으로 하여금 선배 지휘자의 장기(長技) 연주작품을 연주하고 새로운 음악매체에 있어서 선점하게 하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카라얀은 시대를 내다보며 다양한 음악매체를 통해 자신의 음악세계를 펼치는 예지능력을 보여주었는데 그러한 활동으로부터 부를 축적한 것 역시 사실이다. 비록 또다른 마에스트로 첼리비다케 같은 이는 그를 일컬어 ‘코카콜라’같은 상업주의자라고 비난하여도 그같은 경제적 풍요가 베를린 필을 더욱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자신이 오케스트라에서 전권을 휘두를만한 입지를 공고히 하는데도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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