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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한국산 제품과 국력

[LA중앙일보] 발행 2003/09/10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03/09/09 16:41

이종호 뉴욕중앙일보 편집부장

나는 대체로 한국산 제품을 좋게 생각하는 편이다. 가전제품이나 일반 생활용품은 특히 그렇다.

당장 집에서 쓰는 노트북 컴퓨터나 비디오·전자레인지가 모두 한국 제품이다. 그리고 작은 카메라와 DVD 플레이어·가방 등도 미국에서 샀지만 모두 한국 제품이다.

미국에 살면서도 이렇게 한국 제품을 쓰는 것은 한국 물건이 눈에 익은 탓이기도 하지만 가격·디자인·품질 등을 따져 봤을 때 외제보다 나은 게 많아서 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 생활 연수가 짧은 사람일수록 한국 제품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동네에 사는 40대 초반의 한 부부는 3년 전 처음 미국에 와 차를 사면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 차를 샀다. 그것도 2대씩이나. 한국서 10년이나 한국 차를 탔지만 잔 고장 한 번 없었다며 싸고 모양 좋고 옵션까지 빵빵한데 왜 다른 차를 타느냐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양말이나 속옷 같은 것은 일부러 한국 것만 사서 쓴다는 사람도 있다. 미국에도 비슷한 것이 있지만 그다지 세련되지 못하고 몸에 맞지가 않아서란다. 최근엔 고화질 TV·대형 냉장고·에어컨 같은 고급 가전 쪽에서도 LG나 삼성 제품을 구입했다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그렇지만 한국 제품에 대해 불신하는 사람들도 많다. 디자인이 세련되지 못하다, 중고 값이 헐값이다, 애프터 서비스가 불편하다,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등이 그 이유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대체로 이민 온 지 꽤 오래된 경우가 많다. 또 정작 한국 제품은 별로 써 보지 않았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기업은 곧 그 나라의 얼굴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엔 기업이 곧 국력이요 국가다. 남미나 동남아·동구·아프리카 등을 여행해 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 나라 사람들 코리아는 몰라도 현대나 삼성, 대우, LG는 다 알더라며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외교니 홍보니 해 가며 아무리 정부가 애를 써도 결국은 몇몇 대기업이 한국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보면 그 척박한 여건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며 성장해 온 기업들이야 말로 한국을 일으켜 세운 실질적인 애국자라 해야 할 것이다.

미국 땅에서 더 많은 한국 상품이 팔렸으면 하는 것도 결국은 우리 한인들 당당하게 얼굴 들고 다닐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나부터라도 한국 제품 더 많이 써야 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고 60년대 국산품 애용운동 하듯 알량한 애국심에 호소하여 좋지도 않은 제품 억지로 쓰자는 게 아니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충분히 선택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일 경우에 한해 이왕 살 물건 한국 것 하나라도 더 이용하자는 것이다.

일류기업 아직은 멀었다

여기서 충고를 위한 경험담 하나. 지난 달 코스코에서 캠코더를 하나 샀다. 오래 전부터 장만해야 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한국 제품이 눈에 띄길래 반가운 마음에 덜컥 산 것이었다. 그렇지만 액세서리가 거의 없어 제품 박스 속 설명서에 나와 있는대로 이 회사 미주 대리점에 전화를 걸어 배터리 1개와 렌즈 덮개·필터 등을 추가로 주문을 했다.

일주일 쯤 뒤 물건이 왔는데 아뿔싸, 광고 사진에 나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배터리는 이름도 모르는 다른 회사의 것이었으며 렌즈 덮개도 색상이며 모양이 캠코더와는 전혀 어울리지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배터리와 덮개는 반품을 했다.

그 과정에서 몇 번씩 전화하고 택배 회사 연락하느라 불편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정작 괜찮은 캠코더를 사 놓고도 부차적인 일로 마음이 상했던 것이다. 한국 기업들 여태까지 잘 해 왔다. 그리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을 겪으며 사람들이 한국 기업 못믿겠다고 하는 게 바로 이런 것 때문이구나 싶었다.

아무리 물건 잘 만들고 광고 잘해도 소용없다. 사소한 것에서 먼저 신뢰를 얻지 못하면 결국 소비자는 등을 돌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일류로 가는 길은 아직 멀다. 한국 기업들의 분발을 촉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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