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고전음악산책] 명지휘자 로버트 쇼

 어느 고등학교의 음악시험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알고 있는 악단의 이름을 하나만 적어보라는 주관식문제였다. 학생들은 베를린 필하모니커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을 답안으로 적어내었다. 그런데 한 학생은 특이한 답을 적었다. ‘마상원과 그악단’. 그 학생이 적어낸 것은 TV 쇼의 전속악단 이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필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시절 헨델의 메시아중 할렐루야 코러스에 반해 여러 음반을 수집하던 중 특이한 음반을 발견했다. ‘로버트 쇼 합창단’의 오렌지빛깔 나는 LP였다. 언뜻 생각하기에 쇼 합창단이라면 가요스타일로 부르는 것이기에 어떤 해석을 했는지 기대하며 플레이어에 얹었다. 그러나 거기서 흘러나온 음악은 일반 합창단보다도 훨씬 고전적인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떻게 고전음악전문 합창단도 아니고 쇼 합창단이 이렇게 잘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

 내가 로버트 쇼(Robert Shaw)라는 이름을 TV 쇼(Show)로 오해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 로버트 쇼라는 지휘자의 음반이 계속해서 출반되고 있던 것이다. 1940~5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지휘자가 90년대에도 계속해서 음반을 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고 필자가 버지니아 텍에 있던 동안 활동했던 블랙스버그 마스터코랄에도 객원지휘자로 초빙되어 아르투르 오네거의 다윗왕을 연주하였다. 그것이 1998년 5월의 일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1999년초에 세상을 떠났다.

 결국 그는 생애의 마지막까지 합창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합창을 애호하는 이들과 함께 무대를 가졌던 것이다. 그 스스로도 평소 노래부르기를 통해 이 세상이 보다 나은 곳이 되기를 염원했었다.



 로버트 쇼는 1916년 캘리포니아에서 목회자의 아들로 태어나 목사의 길을 걷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학시절 그가 지휘하는 합창단이 각광을 받게 되자 전문 지휘자로 전향하게 된다. 이후 창단한 로버트 쇼 코랄은 NBC 방송국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였던 토스카니니가 지휘하는 모든 연주와 레코딩에 참여하게 되어 이름을 알렸다. 그리하여 가장 미국적인 합창영역의 개척자로 인정을 받게 된다.

 그는 정확한 연주로 정평이 나있는데 아직도 그의 연습법은 여러 합창단에서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음정연습의 경우 가사 대신 숫자를 붙여 보다 정확한 음정에 신경을 쏟는다. 그리고 가사와 리듬의 경우, 리듬을 지켜가며 어느 한 음정만으로 가사를 붙이는 연습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각 요소들이 독자적으로 해결되었을때 비로소 합쳐져서 완벽히 노래가 되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미국의 왠만한 합창단에서 연습중에 발생하는 해석상의 문제에 대해 “로버트 쇼가 말하기를…”을 앞에 덧붙이면 더이상의 논란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자유롭고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민주국가인데도 불구하고 로버트 쇼의 말이라면 마치 독재국가의 최고통치자 만큼이나 절대성을 가지게 되고 그가 살아 생전 일궈놓은 업적들이 합창계의 바이블로 평가받는다. 이것은 미국에서 합창연습때마다 느끼는 이색풍경이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