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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마음으로 꽃구경하는 사람들

[LA중앙일보] 발행 2014/04/08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4/04/07 20:30

이종호/논설위원

봄이다. 삭막했던 야산엔 초록빛이 감돌고 형형색색 꽃들 또한 지천이다. 그냥 있을 수 없었다. 훌쩍 칼스배드 꽃단지를 다녀왔다. LA서 샌디에이고 쪽으로 두 시간쯤 내려가면 나오는 아담한 바닷가 도시다. 작은 아웃렛이 있고 놀이동산 레고랜드가 있어 한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기대대로 꽃잔치가 한창이었다. 삼삼오오 상춘객들의 표정은 화사했고 꽃길을 메운 발걸음들은 발랄했다. 노랑, 분홍, 진홍, 순백의 흐드러짐 속에 몸을 담갔다. 눈도 마음도 흠뻑 꽃물이 들었다. 그렇게 한참 꽃에 취해 있는데 뜻하지 않은 풍경에 시선을 멈추게 됐다.

작은 키의 아시안 아내와 훤칠한 백인 남편 부부였다. 아이와 함께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연신 이야기 하는 아내쪽을 보며 남편은 흐뭇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남편은 긴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이었다.

순간 어느 여행 가이드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한국에서 한 그룹의 시각장애인들이 미 서부 단체관광을 왔단다. 그런데 인솔자가 가이드에게 이렇게 부탁을 했다. "우리가 앞을 못 본다고 절대 설명을 빼먹거나 건너뛰지는 마시오. 일반인들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우리에게도 그렇게 해 주시오."

가이드는 난감했다. 하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고 정말 일반인들에게 하듯 똑같이 설명을 했다. "자, 지금 왼쪽을 보십시오. 태평양 바다를 끼고 우리는 지금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모두 일제히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또 말을 했다. "저 나무를 보세요. 황량한 사막에도 저렇게 꿋꿋이 자라는 생명이 있다는 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역시 모두 그쪽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짜 나무를 보는 듯 서로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그렇게 일정을 다 마치고 난 뒤 그들은 가이드 손을 잡으며 감사를 표시했다. "정말 고마웠소. 덕분에 미국 구경 제대로 하고 갑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부끄러웠다. 장애인은 다를 것이라는, 아니 달라야 한다는, 알게 모르게 녹아있는 내 안의 차별의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떤 자원봉사자의 이야기도 잊을 수 없다. 칼스배드 풍경에 대한 답이었기 때문이다.

"앞이 잘 안 보이는 사람들이 꽃구경을 간다고 하면 놀라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늘 집안에만 있기 때문에 오히려 여행에 대한 욕구는 비장애인들보다 몇 배는 더 강해요. 감성도 풍부해서 손으로 만지게 하고 이것은 빨간꽃, 저건 노란꽃 이렇게 설명해주면 너무 좋아하세요."

어떻게 보는 것이 제대로 보는 것일까. 돌아오는 길 내내 생각했다.

살핀다는 뜻의 한자는 '찰(察)'이다. 이 글자가 들어간 단어로 시찰(視察), 사찰(査察), 감찰(監察)이 있다. 관찰(觀察), 성찰(省察), 통찰(洞察)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함의는 사뭇 다르다. 앞의 셋은 어딘지 권위적이고 강압적이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본다는 냄새도 풍긴다. 반면 뒤의 셋은 가까이서 오래도록, 자신을 향해, 안 보이는 속까지 깊이 꿰뚫어 본다는 의미다. 쳐다보는 눈높이도 같다.

답은 나왔다. 제대로 보려면 관찰과 성찰의 눈으로 살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통찰력도 생긴다. 그러자면 먼저 관심이 있어야 한다. 볼 관(觀) 마음 심(心). 마음을 열고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미국 관광에 나선 시각장애자들은 그랬을 것이다. 칼스배드의 백인 남편 역시 마음부터 열었을 것이다. 더 많이 보기 위해. 더 많이 느끼기 위해.

4월이다. 자연에 마음 빼앗기기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4월은 장애인의 달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도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볼 때라는 말이다. 아니다. '똑같은' 사람들에 대해, 열두 달 내내 마음을 열어 놓으라 일깨워 주는 달이 4월이다.

아무리 뭐라해도 꽃보다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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