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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커네티컷 웨슬리안대 풍물 수업을 가다

'국악 한류'에 취한 캠퍼스

학점 인정 3개 반 운영 전국 유일
2세·타민족 등 60여 명 수강 열기
5월 25일 졸업식 공식 행사 공연


#. 춘삼월 풍년가에 물들다

"지화자 좋다. 얼씨구나 좋고 좋다. 명년 춘삼월에 화전놀이 가세."

새 봄을 맞은 커네티컷주 미들타운의 웨슬리안 대학 월드뮤직홀 정원에 낯익은 태평소 가락이 울려퍼졌다. 전통 행진 음악을 전수하는 악단 뉴욕취타대의 이춘승 단장이 진행하는 이 대학 사물놀이 정규 강좌의 보충 수업이 12일 야외에서 펼쳐진 것.



원래 매주 수요일 초·중·고급반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수업인데 교실로 쓰고 있는 월드뮤직홀 대관 사정으로 이날 보충 수업을 하게 됐다. 이 단장은 지난 2월부터 봄학기 '코리안 드러밍 앙상블' 수업을 맡고 있다.

이 단장은 "주말 수업인 점을 감안해 출석도 안 불렀다. 오늘 온 학생들은 정말 이 음악이 좋아 온 학생들"이라고 소개했다. 3개 반을 합쳐 2세와 타민족 등 60여 명의 학생이 풍물 수업을 듣는데 이날 절반 이상이 참석했다.

숙제는 없지만 수업 시간에 악기를 익혀 '연주'를 해야 한다. 데릭 제프리(21.심리학 전공)는 자기 키보다 큰 나발을 꺼내더니 능숙하게 분다. 불과 10차례 수업을 받은 초급반 학생의 연주라고는 믿기지 않는 실력이다.

"운라는 피아노다. 너희는 가수고. 운라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리듬을 타고 들어오면 된다. 이번엔 아리랑. 원 투 '셋' 고."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며 수업하는 이 단장이 지시하자 학생들이 운라.자바라.나각.나발.용고(龍鼓).태평소 등 각자의 악기로 풍악을 울린다.

연분홍 소라 모양의 나발을 들고 양 볼이 빨개지도록 불던 챙 자오(24·수학 전공)가 연주를 잠시 멈추며 "악기 생김새가 예뻐 골랐는데 소리 내기는 가장 어렵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 단장이 이번엔 꽹과리를 들고 지휘하다 말고 발을 한 번 구르자 북과 장구 파트 학생들이 한국어로 된 추임새를 외치며 바로 치고 들어온다. 흥에 취하자 학생들은 몸을 뉘였다 굽혔다 악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며 장단을 맞췄다.

화씨 70도까지 오른 이날 캠퍼스에 나들이를 온 학생들과 지나가던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 등 수업을 참관하기도 했다.

초급반을 진행하는 동안 다음 중급반 수업을 기다리는 매튜 이(21.수학.물리학 복수 전공)에게 두들기는 소리가 시끄럽지 않냐고 묻자 "전혀. 정말 아름답다(beautiful)"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절은 기본. "제자리에 섯" 구령에 학생들이 발을 구르며 "한나 둘"하고 일제히 멈춰 선다. 수업을 받은 학생 전원이 일어나 90도 깍듯하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것으로 수업이 끝났다.

#. 초급반 경쟁률 2.5대 1

이 단장은 "초급반 28명 모집에 70여 명이 몰려 오디션을 봐야 했다"며 "지루하지 않도록 기존 사물놀이에 취타대 악기도 곁들여 변화를 줬다. 중단됐던 수업의 연장이지만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풍물 동아리는 곳곳에 있지만 '코리안 드러밍 앙상블'은 동아시아학과에 개설된 정규 수업으로 졸업을 위한 필수 이수 수업 중의 하나다. 사물놀이 수업을 학점으로 인정하는 곳은 전국에 메릴랜드대와 웨슬리안대 두 곳 뿐"이라고 설명했다.

메릴랜드에 개설된 수업은 1개 반이다. 이 대학 강사 세바스찬 왕 역시 뉴욕취타대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3년부터 한국 문화관광부와 뉴욕한국문화원으로부터 매 학기 4200달러씩 2년 동안 1만6800달러를 지원 받아 한시적으로 운영됐던 웨슬리안대 풍물 수업은 2005년부터 대학 측 자체 지원을 받아 정규 강좌로 채택됐다.

당시 뉴욕통합풍물단을 이끌던 육상민 단장이 수업을 맡았다. 2010년 일본 전통 북연주 다이코와 인도네시아 가믈란 등 새로운 강좌가 열리면서 학교 지원이 크게 줄어 재정난으로 폐지 위기에 몰렸다는 본지 보도 후 독지가가 1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한인사회의 관심을 받으며 다시 부활했다. 그러나 기부액이 소진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폐강됐다.

초급반을 수강하고 수업이 폐지됐었다는 민성원(24.사회과학 복합 전공)씨는 고급반에서 이번 학기 조교(Teaching Assistant)를 맡고 있다. 그는 "(수업이) 2년 만에 복원됐다. 졸업 전에 수업을 계속 들을 수 있게 돼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이번 학기 수업 운영 자금으로 지원된 금액은 단돈 400달러(강사료 별도). 2년 전 뉴욕한국문화원(원장 이우성)이 전통 국악기와 사물놀이 의상을 전달했지만 턱 없이 부족하다. 음악 수업이 진행되는 월드뮤직홀에는 관객석이 있는 강의실 외에도 400석 규모의 공연 강당까지 갖추고 있을 만큼 화려하다. 강의실 한쪽과 별도로 마련된 악기고(庫)에는 다이코와 가믈란 등 다른 나라 악기들이 정성스레 보관돼 있다. 한국 전통 악기는 그러나 자리가 없어 보일러실에 쌓여 있다.

이 단장은 "자존심도 상한다. 개인 소장 취타대 악기를 놓고 나올 때면 참담하다"며 "내가 이 학교에서 할 일이 있다고 지치지 말아야지"하고 스스로를 달랜다.

#. 풍물 미래가 보인다

지난 가을학기 학교 측으로부터 수업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던 이 단장은 6년 동안 뉴욕취타대에서 활동했던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영주권을 신청해 100일 만에 영주권을 받았다.

그는 "당시 O비자(예술.과학.스포츠 분야에서 특별한 재능과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선별적으로 발급) 신분이라 수업을 할 수 없었다"고 설명하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거짓말처럼 바로 영주권이 나와 봄학기부터 수업을 할 수 있게 됐다. 정부도 (내가) 하던 걸 계속 하라는 거다"며 웃었다.

오는 5월 4일 오후 7시 수업 발표회가 있다. 이어 25일 오전 10시에는 졸업식 공식 행사에 축하 공연단으로 초청됐다. 졸업 행사 연주는 재학생들에게 인기 프로그램이다.

고급반 상당수 학생들은 조교인 민씨처럼 2년 전 초.중급반 수업을 들은 4학년 학생들로 이번 졸업식의 주인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원 식전 행사에 연주단으로 참여한다.

이 단장은 "발표회 후 아이들에게 비빔밥을 한 그릇씩 먹도록 해주고 싶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400달러의 지원금으로는 엄두가 안 나기 때문이다.

퀸즈칼리지와 스토니브룩대에도 풍물 수업을 개설하고 싶다는 이춘승씨는 '봄을 잇는다'는 이름답게 새 봄에 피어난 전통 가락을 잇기 위해 매주 수요일 뉴욕에서 커네티컷까지 2시간을 운전해 달려간다.

커네티컷주 미들타운=장지선 기자

2008년 오바마가 졸업 연설

◇웨슬리안 대학(Wesleyan University)=1831년 지금의 자리에 설립된 웨슬리안대는 최고 수준의 학부생을 양성하는 학부 중심 사립 대학(리버럴아트칼리지)으로 전교생을 다 합쳐도 3000명이 안 된다.

교수 대 학생 비율은 9대 1 정도를 유지한다. 39%가 유색 인종으로 시사주간지 타임은 미국에서 인종과 국적의 다양성을 가장 존중하는 대학으로 꼽았다. 2008년 당시 대선 후보이던 버락 오바마가 졸업 연사로 초대되기도 했다. wesleyan.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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