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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코드가 맞지 않아서인가요?'

이종호 뉴욕중앙일보 편집부장

아프리카 흑인들이 신대륙에 최초로 건너 온 것은 1619년이었다. 네덜란드 선적의 범선 한 척이 스무명의 ‘검둥이들’을 싣고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 들어온 것이 첫 노예선이었다. (유종선 지음, ‘미국사 100장면’ p.57)

이렇게 끌려 온 흑인들이 17세기에 2백75만명, 18세기에는 7백만명이나 됐다. 19세기에도 3백25만명이나 들어왔다. 이 때부터 이들의 후손들은 3세기가 넘도록 미국 소외 계층의 대명사로 살아왔다.

19세기 후반까지도 대다수 백인들은 흑인을 열등한 인종이라고 생각했다.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것 역시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학자들도 ‘흑인 열등론’과 백인 우월주의를 교묘하게 조작하며 인종 차별을 부추겼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1865년 미 수정헌법 13조가 의회를 통과하면서 노예제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렇지만 못배우고 가진 것 없던 그들이 기존 사회로 제대로 편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범죄율과 빈곤의 악순환은 흑인열등론과 겹쳐 100년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 그들에 대한 편견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워싱턴 관광을 갔다가 그만 가방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분명히 차에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가방이 없어진 것이다. 일순 낭패감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방금 전 옆에 있던 몇 명의 흑인 여행객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소행이라고 단정지을 아무런 증거도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혐의를 덮어 씌우려 했던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분실물 센터에 가 보았다. 뜻밖에도 가방은 거기에 있었다. 한 흑인 여학생이 길에서 주웠다며 가져왔다는 것이다. 지갑이며 물건들도 그대로 있었다. 가방을 찾아 나오면서 애꿎은 흑인들을 한 순간이나마 의심했던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선입견이란 이런 것이다. 이같은 선입견 때문에 피해를 보는 흑인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익히 우리가 아는 바다.

미국은 수많은 민족들이 뒤섞여 사는 인종 전시장이다. 뉴욕이나 LA같은 대도시는 더욱 그렇다. 2000년 센서스에 따르면 뉴욕시 총 인구는 8백8천2백78명이었다. 그 중 백인이 44.7%이고 히스패닉 26.9%, 흑인 27.5%이며 아시안이 9.8%를 차지했다. 그러나 어느 인종도 흑인들과는 잘 어울려 살지 않는다. 어딜 가든 흑인 동네 따로 있고 백인 지역이 따로 있다. 교회도 제각각이고 심지어 학교까지 흑인이 많으면 타 인종들은 달가와하지 않는게 현실이다.

35세의 나이에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1929∼1968)는 1963년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될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손에 손을 잡고 형제 자매처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이 연설이 있은 때로부터 다시 40년이 흘렀다. 이제 흑인에 대한 차별은 적어도 법적으로, 제도적으로는 없어졌다. 하지만 킹 목사가 그리던 흑백의 아이들이 진정으로 두 손 맞잡고 함께 걸어가는 그런 날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흑인들을 직접 접해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들의 친절함과 선량함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그들이 함께 어울린다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고개를 젓는다.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외모, 타고난 낙천성에 그다지 치열해 보이지 않는 그들의 품성이 우리 한인들과는 처음부터 ‘코드’가 맞지 않아서일까.

‘이웃사랑’이니 ‘더불어 살기’니 쉴 새 없이 얘기들은 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이 내 곁에 다가오는 것은 한사코 꺼리는 이런 이중성이야말로 미국에 살면서 견디기 힘든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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