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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글쓰는 대통령이 보고 싶다

[LA중앙일보] 발행 2014/04/15 미주판 20면 기사입력 2014/04/14 21:51

이종호/논설위원

#. 박근혜 대통령은 수필가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이다. (2013년 9월 문예지 '현대문학'은 오래된 그의 수필 4편을 실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1993)' 등 몇 권의 수필집도 냈다. 아픈 가족사를 가진 그에게 글은 치유와 위안의 도구였다고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지금도 계속 글을 쓴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김대중 대통령은 더 많은 글을 썼다. 고난의 세월을 살면서도 고졸 학력의 한계를 치열한 독서와 사색으로 극복했다. 그 과정에 늘 글쓰기가 있었다. 글쓰기는 정치인 김대중의 평생 신념을 지탱해 준 버팀목이었다. 그는 2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옥중서신'과 '대중경제론'은 지금도 읽히는 명저다.

글쓰기 하면 노무현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몇 권의 책을 낸 그는 청와대에 들어가서도 인터넷을 통해 글을 썼다. 그것이 국민과의 직접 소통이라고 믿었다. 정치인 치고 노무현 대통령만큼 말하기와 글쓰기에 대해 고민한 사람도 없었다. 역설적으로 그것 때문에 많은 어려움도 겪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권력과 돈으로 통치하던 시대는 끝났다, 오직 가진 것이라고는 말과 글, 그리고 도덕적 권위뿐"이라는 그의 말은 반드시 이뤄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다.

그런 노 대통령의 글쓰기 원칙이 알려져 화제다.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 최근 펴낸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에서다.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 같다'는 표현은 삼가 해주게 ▶쉽고 친근하게 쓰게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

노 대통령으로부터 두 시간에 걸쳐 직접 들었다는 33가지 지침 중 일부다. 이것만으로도 어떤 글쓰기 교본으로도 손색이 없다.

#. 무엇인가를 쓴다는 것은 단순한 소일 이상의 작업이다. 그런 작업들이 모여 한 시대의 풍경도 되고 문학도 된다. 아무리 소소한 일상도 기록하면 역사가 된다. 평범한 사람들의 글쓰기도 더 없이 의미 있고 중요한 이유다.

중앙일보 독자 글쓰기 강좌가 3회째 진행되고 있다. 거기서 강조하는 것도 이런 것들이다. 물론 글쓰기엔 정답은 없다. 하지만 기본 규칙은 있다. 그게 맞춤법이고 어법이고 표기법이다. 좋은 글은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다지만 이런 것까지 무시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1회 강좌 땐 수필가로 전문적인 글쓰기를 하는 분이 있었다. 그분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얼떨결에 문인이란 호칭은 얻었지만 사실 부끄럽습니다. 맞춤법조차 여전히 틀리는 게 많아요. 기회 있을 때마다 자꾸 더 공부해야죠." 이런 사람에게서 어떻게 좋은 글이 나오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떤 참석자는 글쓰기 공부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오랫동안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그냥 묻어버리기엔 아쉬운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 것들을 문장으로 붙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란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은 고품격 욕망이다. 그렇다면 그 욕망은 자신에 대한 성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생각이 모이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거꾸로 글을 쓰지 않으면 자기 성찰도 깊어지지 못한다.

글쓰기를 어지럽히는 가장 큰 적은 무지와 아집이다. 이는 공부하지 않는데서 오는 병증이다. 공부가 무엇인가. 읽고 쓰는 것이다. 읽지 않고 쓰지 않는데 어찌 자기 성찰이 있으랴.

조금 알고 다 아는 것처럼, 모르고서 아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만큼 민망한 것도 없다. 어디 글쓰기만일까. 정치나, 종교나, 교육이나 다 그렇다. 갑자기 글 쓰는 대통령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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