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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 60년간 반복 재생된 '녹화 필름'

정구현/사회부 차장

'…구조가 제대로 되었겠나. 대체 이 참사의 책임자는 누구인가. 녹화된 필름을 또 한 번 보는 것 같다. 장관이 현지에 날아가고 검찰이 움직이고 누가 소환되고, 구속되고. 예(例)에 따라 예(例)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1970년 12월 22일 한국의 한 일간지 사회부장의 칼럼이다. 326명의 목숨을 앗은 남영호 침몰사고가 주제였다. 당시 참사 원인은 '화물 과적.항해부주의.늦은 구조.신속하지 못한 정부 대처' 때문이었다. 글은 44년 뒤 벌어질 세월호 참사를 정확하게 예언했다.

'녹화된 필름'은 한국 전쟁 이후 60여 년간 반복 재생됐다. 1953년부터 한국 해상에서 발생한 23건의 대형 침몰사고 기사를 찾아봤다. 20년 된 낡은 배 개조(1953년 창경호), 86명 초과한 과다승객(1963년 연호), 침몰한 창경호 엔진 수리해 사용(1967년 한일호), 정원 초과 급커브 전복(1974년 항만예인선 YTL), 141명 초과승선.구명장비 작동 안해(1993년 서해페리호).

보도 제목들은 마치 같은 사고를 다룬 것처럼 동일하다. 선적한 화물이 쌀가마에서 감귤로, 멸치액젓으로, 최신형 차량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항상 공분은 집요하게 대상을 찾는다. 이번엔 가장 먼저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선장에게 분노가 쏟아졌다. 정부를 탓하기도 하고, 더딘 구조작업을 지탄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공분이 향해야 할 주소는 그렇게 뚜렷하지 만은 않다. 침몰의 원인은 그보다 훨씬 넓고 깊다. 퇴역한 일본 배가 한국 여객선으로 도입된 2012년 이후 2년간 문제들은 과적 화물처럼 차곡차곡 배에 쌓였다.

배는 개조됐다. 시신이 한꺼번에 인양된 3~5층 객실은 증설됐다. 개조 허가 도장 하나, 점검 완료 사인 한 줄, 개조 도면의 선 하나가 침몰을 도왔다. 당일 화물의 무게도 거짓 신고됐다. 으레 그렇듯이 신고자나 감독자 모두 눈을 감았다. 또 짐도 단단히 고정되지 않았다. 짐을 제대로 묶지 않은 선원이나, 고정되지 않은 짐을 고정됐다고 확인한 감독관도 배를 기울게 했다. 선원들은 안전지침도 몰랐다. 출발한 배의 키는 6개월 경력의 3등 항해사가 잡았다. 한국 해상에서 가장 험하다는 맹골수로에서다.

배는 넘어졌다. 선장은 40분간 탈출 명령을 할까말까 망설이기만 하다가 배에서 빠져나왔다. 가장 먼저 뭍에 오른 선장은 온돌방에서 젖은 지폐를 말렸다. 그가 돈의 안전을 세는 동안 정부는 실종자의 안전을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장처럼 정부도 우왕좌왕, 갈팡질팡만 했다.

위에선 수색작업에 총력을 기울이라 지시만 했고, 아랫 사람들은 어떻게 지시를 따라야 하는지 몰라 허둥댔다. 직무유기의 바다에서 제 할 일을 한 유일한 이들은 희생된 아이들이다. "대기하라"는 방송 한마디에 순응했다. 배가 기울고 물이 차는데도 믿고 구조를 기다렸다.

사고 현장은 사실 바다 위가 아니라 육지다. 또 조직적 문제라고들 하지만 문제는 '조직'이다. 자격없는 사람이 책임자로 군림하고, 아래에선 그 책임자의 눈치를 보며, 위에선 자격없는 이들이 하는 말만 믿고 눈 감고 귀 막는다. 사고가 나면 책임을 전가하고, 도망치다 구석에 몰리면 '나만 그런 게 아니다'라고 다른 이들을 손가락질 한다.

눈을 돌려보면 주위에 침몰 직전의 조직과 단체는 수두룩하다. 다만 사고 당일 배를 몰 선장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선장은 최고위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배의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모든 이들이다.

세월호가 구조센터에 전한 마지막 교신 내용을 침몰 직전의 조직 선장들에게 묻고 싶다.

"구조가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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