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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노벨상

이기준 시카고중앙일보 논설위원

세계에서 가장 권위가 있고 명예로운 상이라면 역시 노벨상이다. 스웨덴의 화학자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제정됐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벨은 강력한 폭발성을 가진 니트로 글리세린을 이용해 1867년 다이나마이트를 발명, 엄청난 재산을 축적했다.

1896년 12월10일 그가 뇌출혈로 사망하기 전 그의 사업체는 90여개, 재산은 1천5백만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노벨은 다이나마이트가 전쟁무기로 이용돼 숨진 수많은 목숨들에 대해 항상 깊은 가책을 느꼈다.



사망하기 전 재산을 헌납해 매년 화학·물리·의학·문학·평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사에게 상을 주도록 유언한 것은 이 때문이다.

수상자 선정은 4개 분야는 스웨덴, 나머지 평화상은 노르웨이의 노벨 위원회가 담당토록 했다. 이에 따라 1900년 9백만 달러의 기금으로 노벨 재단이 설립, 이듬해인 1901년 첫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1969년 스웨덴 중앙은행이 경제학상을 신설해 그 뒤부터 노벨상은 총 6개 부문으로 늘었다.

노벨상은 매년 9월 다음 해 수상자 후보 추천의뢰서를 발송, 이듬 해 1월 말 마감한다. 곧 2월부터 심사해 매년 10월 두번째 주부터 부문별 수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이 상은 권위와 명예도 명예려니와 처음부터 상금액수 또한 엄청나기로 유명하다. 첫 해인 1901년은 15만8백 크로나(약 4만2천여 달러)였다.

당시 스웨덴 대학 교수 연봉의 25년치, 미국 교수 연봉의 15년치에 달했다. 그래서 이 상을 타면 우리 말로 ‘팔자를 고친다’ 고 했다.

이 상금은 1981년 1백만 크로나, 99년 7백90만 크로나, 2001년부터는 1천만 크로나(약 94만여 달러)로 늘었다.

현재는 상금도 상금이려니와 각국 초청강연 등 이에 따른 부수입도 만만치 않다.

2002년 말 현재 역대 노벨상 수상자는 총 6백15명이다.

이중 미국인이 2백26명으로 가장 많고 영국인 96명, 독일인 73명의 순이다. 역시 미국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미국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중 40%가 유대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미국의 유대인 수는 미국 전체인구의 0.2%에 불과하다. 유대인의 우수성은 어려서부터 철저한 탈무드식 민족교육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국과 인접한 일본도 과학·의학 부문에서 지금까지 총 9명이나 수상자가 나왔다. 이 부문에서 한국인은 아직 한 명도 없다.

지난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 상은 국민 몰래 북한에 5억 달러를 준 끝에 따낸 수상이라 해서 빛을 잃고 있다.

한국인 과학자로 노벨상에 가장 근접해 있었던 인사는 42세의 한창 나이로 1977년 불의의 교통사고에 의해 작고한 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다. 당시 그의 소립자 연구업적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지난 2000년 물리학상 공동수상자인 네덜란드의 토프트 교수도 이 박사의 연구결과와 비슷한 업적으로 이 상을 받았다. 이 박사는 당시 페르미 연구소 이론물리학 전임부장이자 시카고 대학 교수였다.

노벨상은 전통적으로 여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까지 과학·의학부문 여성 수상자는 10명이 채 안되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물리·화학자로 너무나도 유명한 프랑스의 퀴리 부인이 1903년 물리학상을 수상한 것이 처음이다. 그녀는 1911년 화학상까지 수상했다.

그녀의 딸 이렌 졸료 퀴리도 1935년 화학상을 받았다.

한편 평화상 부문 여성 수상자는 10명쯤 된다. 1905년 영국의 국제 평화 사무국 폰 주트너가 수상한 것이 처음이었다.

올해 시카고는 노벨상 풍년이 들었다.

일리노이 주립대학에서 3명, 시카고 대학과 알곤연구소에서 각각 1명이 배출됐기 때문이다(본보 8일자 미주판 3면). 문학상 존 쿠시어 교수를 비롯, 의학상 폴 러버터 박사, 물리학상 안소니 레겟· 아브리코소프 박사, 바로 그들이다.

또한 의학상 공동수상자인 맨스필드 교수 역시 일리노이 대학에서 연구교수를 역임한 인사다.

일리노이가 세계적인 교육과 학문연구 중심도시임을 증명하고 있다. 일리노이 주민들로서는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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