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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대통령이 바이러스인가

이종호/논설위원

신문사로 보내오는 독자투고가 서너 배는 늘었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얼마나 분통이 터졌으면 그랬을까.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나 보다. 이메일도 쏟아지고 우표 붙여 보내온 손 글씨 편지도 수북히 쌓였다. 모두가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부조리에 분노하며 모국을 걱정하는 소중한 마음들이다.

그런데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조금 다른 느낌이다. 댓글은 점점 편 가르기 양상이 되고 있다. 내 생각만 옳고 네 생각은 100% 틀렸다는 날 선 공방이 섬뜩하다.

처음엔 공감했었다. 참사의 원인과 사고 대처 과정의 미숙함에 대한 성토였으니까. 눈앞에서 가라앉는 배를 보고도 헛발질만 해댄 구조당국에 대한 당연한 분노였으니까. 그리고 시스템 정비와 국가 개조로 이어져야 한다는 올바른 지적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모든 게 정부 탓, 대통령 탓이라는 주장들만 넘쳐난다. 차마 옮기지 못할 비난과 욕설이 난무하고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글까지 나돈다.

이게 민심일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결국은 소모전이다. 끝없는 정쟁(政爭)이다. 국정원 댓글 공방으로 1년 내내 그랬듯이 이번 사고 역시 대통령 임기 내내 쟁점이 될 것이다. 애당초 박근혜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과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이 나라를 망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간의 평행선 달리기이니 어떻게 접점이 있을까. 이래저래 정치는 계속 더 강퍅해 질 것이고 그 틈바구니에서 국민만 더 피곤해 질 것이다.



1589년, 임진왜란 3년 전이었다. 조선은 일본으로 통신사를 파견했다. 왜(倭)의 정세 파악을 위해서였다. 돌아온 사신들의 보고는 정반대였다. 정사 황윤길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 주변을 살핀 뒤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서인(西人)이었다. 부사 김성일은 거꾸로 "그러한 정세가 있음을 보지 못했다"고 맞받았다. 그는 동인(東人)이었다. 당리당략 앞에 진실은 가려지고 국가와 백성의 안위는 아무런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무능한 조정, 무대책 당파 싸움의 대가는 고스란히 백성들이 져야했다. 일본은 쳐들어 왔고 국토는 유린됐다. 임금은 기약 없는 피란길에 올랐고 지방수령들은 달아나기 바빴다. 자신들을 버린 지도층의 도피 행렬을 바라보며 백성들은 통곡했다. 이게 '나라'냐며. 이게 '민본(民本)'이냐며.

지금도 상대측 말이라면 반대부터 하고 보는 상극의 정치판이다. 권력과 이권과 자기 목숨 챙기기에 급급한 파렴치한들은 요직마다 앉아있다. 420여년 전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사람은 바이러스와 백신 두 부류가 있다던 어떤 목사님 말씀이 생각난다.

어느 사회나 비리와 탐욕은 있다. 부패와 무능도 있다. 세월호 참사도 결국은 그런 악질 바이러스들의 합작품이었다. 하지만 선한 사람, 의로운 사람,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몫은 해내는 사람들도 많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것은 의병들과 이순신 같은 무욕의 사람들이었다. 비극의 진도 앞바다에서도 살신성인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백신이다. 그런 사람들이 바이러스로부터 사회를 지켜낸다. 그냥 봐선 모른다. 그가 바이러스인지, 백신인지. 그러나 바이러스는 가슴이 없다. 눈물이 없다. 시늉만 할 뿐이다. 아무리 백성이 죽어나가도, 아무리 참사가 이어져도 자신의 안위만 걱정할 뿐이다.

대한민국 대통령, 그는 바이러스일까, 백신일까? 임기가 끝나면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그러니 지레 단정은 말자. 너무 흔들지도 말자. 선거는 또 돌아온다. 그가 바이러스라 여긴다면 그 때까지 내가 먼저 백신이 되면 된다. 그러면 바이러스는 저절로 물러가게 되어 있다.

이제 사이버 공간의 핏발 서린 선동엔 나부터 조금 둔감해지려 한다. 대신 사랑과 배려의 말에 더 귀를 열려 한다. 미주 한인들이 한 자 한 자 써서 보내오는 따뜻한 기고문들이 그래서 더 고맙고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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