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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그 여자 아이는 왜 쉬지 않고 걸을까

[LA중앙일보] 발행 2014/05/03 미주판 18면 기사입력 2014/05/02 21:51

이수정/사회부 기자

하루, 이틀, 사흘. 쉬지 않고 거리를 걷는 여자 아이가 있다. 또래 친구들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할 시간이지만 앳된 얼굴에 책가방을 메고 하염없이 걷는 이 아이의 발걸음은 학교로 향하지 않는다. 다음 주면 18살이 되는 이 아이는 홈리스 청소년이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은 이렇게 몇날 며칠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기력이 없지만 그래도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멈추는 순간 강도와 성폭행 등 온갖 범죄의 표적이 되기 때문이다. 푹신한 침대와 먹을 것이 있는 집이 있지만 갈 수 없는 집이다. 그 집에는 10살도 되기 전부터 성폭행을 일 삼던 4살 터울의 오빠와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가 살고 있다.

LA한인타운 인근 커버넌트 하우스에는 오늘도 방황하던 아이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가출 청소년 보호 지원 비영리 단체인 커버넌트 하우스. 39년 역사의 청소년 홈리스 셸터로 미국과 캐나다, 라틴아메리카에 22개 보호소를 운영하고 있다. 가주에는 LA(1325 N. Western Ave, Hollywood)와 베이 지역(200 N. Harrison, Oakland) 2곳이 있다. 1988년 설립된 LA보호소 최대 수용 인원은 120명으로 지난 25년간 총 17만 명의 청소년들이 다녀갔다. 18세 이상이면 이곳에서 2년까지 요리나 음악, 영화제작 등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고 학교도 다닐 수 있다.

LA보호소에서 아이들 16~18명씩을 책임지는 케이스 매니저는 아이들에게 아빠와 엄마 같은 존재다. 아픈 아이들은 아동 병원에서 매주 봉사 오는 의사들에게 진료를 받는다. 커버넌트 하우스 LA보호소에서 4년째 개발국장으로 일하는 멜라니 메리언스 언론 담당자는 "하루 종일 걷다 보니 아이들 절반이 다쳐서 온다. 하지만 몸에 난 상처보다는 마음에 입은 상처가 더 크다"며 "커버넌트 하우스는 아이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곳이다, 정신적인 문제가 없는 한 독립해 나갔다 실패한 아이들도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 다시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한 20대 여성을 만났다. 그동안 자신의 불행이 가장 큰 줄로만 알았다는 소희(가명)씨 이곳에 와서 자기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던 아이들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에게도 희망이라는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소희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끝내 언론 공개는 꺼렸다. 십수 년이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떨리는 목소리에서 두려움과 공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UC버클리와 하버드대학원을 졸업하고 얼마 전부터 LA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커버넌트 하우스를 찾아 예전에 자신이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이곳을 찾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100만 명 이상의 청소년 홈리스들이 커버넌트 하우스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개척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거리를 방황하며 세상과 등지고 살고 있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있다. 누군가로부터 뻗쳐올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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