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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In]기자에게 건네지는 '돈봉투'

정 구 현 · 사회부 차장

봉투는 자석이다.

국어사전에서 돈봉투와 기자는 딱 달라붙어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촌지'의 정의를 '정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주는 돈'이라고 했다. 사전은 이해를 돕기 위해 친절히 부연설명을 붙였다. '흔히 기자나 선생에게 주는 것을 이른다'고 했다.

두 명사가 잘 붙는 성질을 가졌다는 것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실감했다. 대개 저의는 같다. '이거 먹고 잘 봐달라'거나 '이거 먹고 쓰지 말아달라'는 싸구려 부탁이 돈봉투라는 비싼 포장을 입는다. 다소 차이가 있다면 전달 방법이다.

다짜고짜 주머니에 봉투를 찔러넣으려는 사람도 있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가방 안에 몰래 넣어두기도 한다. 돈이 아니니 받아도 된다며 상품권을 점잖게 건네기도 한다.



노골적인 부탁을 하는 사람일수록 노골적이지 않은 방법을 쓴다. 그중 하나는 책이다. 봉투를 책갈피에 끼워준다. 멋모르고 책을 받았다가 다음날 출근하면서 돈을 준 사람 사무실에 들러 봉투를 내던지듯 주고 오기도 했다.

이 '책갈피의 봉투' 때문에 얼마 전 데쟈뷰를 경험했다. 세월호 참사 직후 한 공기업 감사가 LA 현지사무소로 시찰을 왔다. 당연히 외유성 출장 여부를 의심했다. 때마침 감사가 골프를 쳤다는 제보도 받았다. 취재를 거의 마쳤을 때는 감사가 현지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이었다.

그날 아침부터 휴대폰이 시끄러웠다. 현지 사무소 직원이다. 전화를 받지 않았더니 감사를 '모시고' 회사로까지 찾아왔다. 기사 무마가 방문 목적임은 뻔했다. 그날 오후 현지 사무소 직원만 불러 회사 앞 커피숍에서 만났다. 마지막 사실 확인을 위해서였다.

한 시간 여 사정 설명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 직원이 테이블 위로 책 한 권을 건넸다. 노란색 표지 영문책은 제목부터가 생뚱맞았다. 'It's Okay to be the Boss'다. 대체 취재 기자가 '보스가 되도 괜찮은 이유'를 알아서 뭐하겠는가.

표지를 열었더니 두툼한 봉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상대는 "감사님이 꼭 전달하라고 했다"며 웃었다. 본인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기사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돈봉투를 받은 그때다.

돈봉투를 준 감사는 국가가 운영하는 단체 안에 뇌물수수 직원은 없는지 감시해야할 당사자였다. 감사의 돈봉투 전달은 외유성 출장보다 더 용서하기 어려웠다.

고작 골프 한번 쳤다는 의혹 보도를 막으려고 돈봉투를 건네는 사람이면 더 큰 실수에는 어떻게 대처할 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기사를 썼고 필요한 후속조치도 했다.

감사의 돈봉투를 거부한 이유는 내가 고결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고백하거니와 동포사회 기자직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팍팍하다. 박봉이어서 혼자 벌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어렵다. 사명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뜻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만족조차 없다면 '기자질'은 오래 못한다.

어디 그뿐인가.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한데도 세련된 겉모습을 강요받는다. 신문의 대표로 취재원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본 것 많고 들은 것 많아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막상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두툼한 돈봉투로 얄팍한 월급 봉투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는가. '이까짓 돈 몇 푼에 흔들리나'하면서도 '이 돈이면…'하는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다. 순간의 망설임에 불과한 갈등은 나중엔 자괴감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내가 기자를 왜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다. 기자는 때론 그렇게 약해지는 존재다.

그러니 제발 부탁하고 싶다. 봉투를 꺼내지도 마시라고. 봉투는 자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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