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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뿌연 창 열고 하늘을 보면

'그믐 이지만'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가슴 비워주는 달 빛/접혀진 꽃잎/하나하나 어루만지며/시든 나에게도 다가오고 있네" 라고요.

옛 시인들이 마음처럼 움직여 주는 부드러운 붓을 잡고 검은 먹을 유유히 갈아가며 시를 쓸 때나, 시상처럼 손에 간신히 잡히는 몽당연필 잡고 시를 쓸 때나, 요즘 세대 시인들이, 까만 자판 위에서 열 손가락으로 탱고 추듯 현란하게 시를 쓸 때나, 가난한 마음의 시인들 단골 주제 중에 하나가 '달'입니다. 달의 모양은 어림잡아 29.5일 주기로 그 모습이 삭,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으로 변하지요. 달은 지구 둘레를 하루에 13도씩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구둘레를 공전하고요. 달의 공전 주기와 자전 주기는 27.3일로 같기 때문에 지구에서 달을 보면 항상 달의 같은 면만 보이고 달의 뒷면은 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삶을 세는 달력을 보면 서양은 빛나는 해, 동양은 아늑한 달이 기초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온갖 번쩍거림, 부스럭거림 그리고 혼탁함이 푸근한 어두움과 같이 모두 가라앉은 다음에, 낮 내내 세상에 끌려다니느라 기진맥진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달은 치유의 빛으로 다가오지요. 사람을 자극하며 쳐다볼 수가 없는 강렬한 태양에 비하여, 달빛은 어린아이 덮어주는 포대기처럼 정답고 부드럽기만 합니다. 태양은 더욱 높은 목표를 가지라고, 여러 말 말고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라고, 이익되는 사람만 만나라고, 이글거리는 불 채찍을 휘두르며 인간들을 다스립니다.



하지만 달은 사람을 만나도 목적 없이, 길을 걸어도 목적 없이, 꽃을 보아도, 책을 읽어도, 산을 보아도 목적 없이 그냥 그대로 보라고 합니다. 실직한 가장을 달래주는 것도, 실연당한 여인 보듬는 것도, 기가 막힌 일 당한 이 감싸안아 주는 것도 달빛입니다.

달을 보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달은 달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마음을 열어 가슴 색 지혜를 선물로 안겨줍니다. 두리둥실 보름달을 좋아하기 보단 조각나 꺼진 쪽을 볼 수 있는 사람. 점점 밝아지는 달빛 따라가기 보단 기울지만 그믐달 그늘 넉넉히 품고 사는 이에게만 말이지요.

낮에 젊은 날에 찢긴 생채기 아물게 하며, 포근하게 잠이 들게 해주는 빛. 그 달빛이 어두움과 추위로 접혀진 꽃잎, 상심한 풀잎을 하나하나 천천히 부드러운 손으로 보살핀 후에 드디어 한 사람에게 다가갑니다. 오늘 밤에는 유난히 힘주어 억지로 버티고 서있는 그 사람의 상심한 발끝부터 서서히 감싸주는 것이 보이시나요,

이제 비움의 힐링이 시작됩니다. 언제나 한쪽 면만 보는 세상, 여러 착각 속에 점점 어두워지고 있는 그믐 같은 답답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달을 자주 보는 사람은 달빛 덕분에 잘 견디며 살아갑니다.

마음이 맑은 사람은 지혜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고난을 극복하여 살아갑니다. 혹시 오늘 밤 마음이 먹먹하시다면 마음 같이 뿌연 창 열고 하늘 올려다보시지요. 맑은 지혜가 떠오르게 된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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