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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20] 마지막 날까지 글을 썼던 독자

김완신/논설실장

슬픔의 감정은 극히 개별적이다. 사회나 국가 전체를 집단의 슬픔으로 몰아넣는 상황도 발생하지만 결국 슬픔을 느끼는 주체는 개인일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가족이나 친지, 주변 사람들의 죽음은 알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의 죽음보다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기자는 여러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다.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사람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이런 만남을 통해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를 넘어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런 사람들의 소식을 부고로 접하는 경우도 있다.

오피니언 면에 몇년 째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1~2편씩 독자투고를 보내 오는 60대 한인이 있었다. 종이 전체에 여백도 없이 빼곡히 친필로 쓴 글을 팩스로 보낸다.

일기를 쓰듯 일상을 담기도 하고, 사회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날을 세우기도 한다.



그가 2년 전 본사가 주최한 일반독자 기고자 초청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때 "기자보다 더 많이 글을 쓰는 것 같다"는 말에 그가 "변변치 않은 글이지만 남은 평생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당장은 아니지만 컴퓨터를 배워 워드프로세서로 글을 쓸 것이라고도 했다.

신문 오피니언 면은 정치가나 학자, 문인 등 소위 대단한 사람들의 글만 실리는 지면은 아니다. 일반 독자들도 참여할 수 있다. 신문의 다른 지면이 기자가 취재해 쓴 기사를 일방적으로 알리는 것이라면, 기고는 반대로 독자들의 의견을 신문사와 다른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통로다. 자신의 분야에 일가견을 이룬 칼럼니스트의 글도 중요하지만 일반 독자들의 글이 더 큰 공감을 주고 호응을 얻는 경우도 많다.

중앙일보에도 정기적으로 오피니언 면에 기고해 오는 독자들이 많다. 사진과 함께 게재되지는 않지만, 작은 지면에서도 빛나는 글을 보내는 기고자들이다. 필요에 따라 전화통화도 하지만 대부분 그들과 대화하는 통로는 보내온 글이다. 글은 아무리 객관화한다고 해도 결국 자기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고, 글쓴이의 사생활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독자의 글 속에는 생활의 소소함이 나름의 빛깔로 채색돼 있다.

기고 횟수가 쌓이다보니 60대 한인 기고자도 직접적인 만남에서보다 글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 더 많다. 그런데 얼마 전 그의 부인에게서 논설실로 전화가 왔다.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남편의 소식을 알리는 전화였다. 부인은 남편이 생전에 많은 글을 보냈던 중앙일보에는 알려야 될 것 같아 전화를 했다고 한다. 부고를 알리는 전화에서 부인은 조만간 남편이 은퇴하면 서재를 마련해 본격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게 할 계획이었다고도 했다.

그는 죽음을 맞이했던 당일에도 두 편의 글을 신문사로 보내왔다. 그 글 중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말 주변이 없는 나는 글과 대화를 하면서 한 맺힌 가슴을 풀어 놓기고 하고, 위로를 받으면서 교감을 나누기도 한다. (글쓰기는) 집중력이 약한 나에게 집중력을 키워주고 정신수양과 심신단력을 시켜준다. 또한 글을 쓰면 시간도 잘 간다. 무아지경에 빠져들면서 스트레스도 해소된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면 화도 잠재워주면서 차분하게 해준다.'

우연하게도 글쓰기에 관한 평소의 생각을 담은 그의 글은 결국 유고가 됐고 신문사에 보내는 마지막 기고문이 됐다. 그는 기고문을 보내주는 다수 기고자 중의 한 명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깊은 애도와 또렷한 기억으로 다가오는 것은 글쓰기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이다. 이제 그의 기고를 받아 볼 수가 없다.

고 박승호씨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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