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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늙으면 시골서 살아야 한다고?

엄 을 순/문화미래이프 대표

개에게 물렸다. 배은망덕한 개 같으니라고. 밥 주고 물 주고, 산책까지 시켜 주는 주인을 배신한, 정말 의리 없는 개다. 한 배 속에서 나온 남매(?)가 피 터지게 싸우는 걸, 난 그저 말렸을 뿐인데.

피가 뚝뚝 떨어지는 팔뚝을 잡고 남편을 불렀다. 가까운 병원이라 해봐야 시속 60㎞로 20분은 가야 되는 거리. 일요일은 열지도 않으니 응급실이 있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 알코올을 들이붓고 솜으로 꽉 눌러 피는 멈췄지만, 상처가 욱신거린다.

늙으면 한적하고 경치 좋은 곳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 다 괜한 말이다. 문명의 혜택과는 거리가 멀 것이고, 당연히 근처에 병원도 없다. 이렇게 다친 건 그나마 낫다. 초를 다투는 뇌나 심장에 이상이 생겼을 땐, 하염없이 응급차 기다리다 물 좋고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집 문 앞에서, 그냥 꼴까닥 숨넘어갈 거다.

30분 만에 도착한 응급실. 만원이다. 개는 잡균이 많아 며칠 지난 다음에 꿰매야 한다면서 상처를 솜으로 닦아내던 의사선생님. "오늘 벌써 개에 물린 환자가 네 번째예요. 근데 원래 개는 주인을 물지 않는데…." 이 말을, 오죽 못났으면 키우던 개에게 물리냐는 말로 해석해야 하나.



그날 이후 꼬박 3주를 병원에 들러 링거도 맞고 소독도 했다. 자꾸 가다 보니 시골병원이란 곳이 참 정겹더라. 일단 대기실 모니터에 적힌 대기환자 이름부터 그랬다. 어디를 가나 튀는 내 이름이, 이곳 모니터에서는 복순.간난.끝순들과 더불어 아주 편안해 보였다. 병원엔 의사도 많지 않아 간단한 수술을 수시로 해가며, 수술실과 진찰실을 오르락내리락하지만 환자나 의사나 한마디 불평 없이 다들 웃는 모습으로 느긋하다. 서울병원에선 어림없는 일이다. 몇 번씩 버스 갈아타고 나들이들 오셨으니 기다리는 시간도 즐거우신가 보다.

붕대를 동여맨 내 팔뚝을 바라보며 할머님 한 분이 말을 붙이셨다. 다친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 다음 날 병원 대기실로 막 들어서는데 낯선 할머니 한 분이 말을 거신다. "어쩌다 개에 물렸수?" 대답하기도 전에 또 다른 낯선 할머니의 설명. "키우던 개가 먹을 것 가지고 싸우기에 말리다 그랬대요." 말하지 않은 것까지 어찌 아시나. 바로 그때 앞자리에서 수박농사 얘기를 하시던 서너 명의 할머님 환자들이 우르르 일어났다. 오일장 가는 버스 올 시간이라며 나가시다가 뒤돌아 한마디씩 하신다. "개털을 불에 꼬슬려 반죽해 붙이면 좋대. 한번 해봐." "아녀, 밥 잘 먹음 빨랑 낫는겨." "낼두 오지?" "아까 그랬잖어. 한참 와야 한다구. 앞으로도 한참 볼걸."

다들 나를 반기시는 눈치다. 약간은 이질적이고 상대적으로 젊어서 조금은 신선한가. 이 맛에 내가 시골에 산다. 그 후 보름 이상을 할머님들과 정을 키웠다. 올 김장 때는 배추도 가져다 먹으란다. 심지도 않은 배추를 예약까지 해 놨다. 이제 팔뚝 상처엔 예쁘게 딱지가 앉았다. 잘생기신 의사선생님 솜씨 덕분인지 흉터도 그리 크지 않다. 흉터가 희미해질수록 상처의 쓰라림도, 개를 통해 받은 배신감도, 병원에서의 우정(?)도 차차 잊힐게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우리는 엄청난 상처를 받았다. 지금도 온 국민이 고통으로 신음 중이다. 그러나 모든 건 다 지나가게 되어 있다. 언젠간 상처도 아물 거다. 하지만 흉터만은 부디 우리 몸에 깊게 파인 채로 남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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