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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소녀상 소송' 변호사의 은밀한 사과

구혜영/사회부 기자

지난 19일, 대단한 '사과'의 문턱을 봤다. LA다운타운 메리엇호텔 컨퍼런스룸에서 열린 메이어 브라운 로펌과 한인 변호사들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다.

이미 익명의 관계자들로부터 메이어 브라운이 일본계 원고를 도와 소녀상 철거 소송을 맡게 된 연유를 밝히고 사과할 예정이라는 제보를 받은 터라 궁금증은 컸다. 궁금증은 크게 ①왜 지금인가 ②왜 한인 변호사들 앞인가 ③왜 전 고객의 뒤통수를 치는가 등으로 간추려졌다. 하나같이 '왜'라는 부사 앞에 '하필'이 붙었다.

한창 마감시간에 쫓기는 오후 4시, 부리나케 찾아간 그곳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문틈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민 한 참석자는 "관심은 고맙지만, 오늘은 비공개 모임이라 그냥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오늘 모임을 주최한 이가 누구인지만 알려달라"는 말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이상했다. 그곳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진 남가주한인변호사협회(KABA)나 한인커뮤니티변호사협회(KCLA)측은 둘 다 회장이 불참한다고 했고, 일부 인사는 "그런 게 있어요?"라고 되물었다. 메이어 브라운 LA사무소도 '모른다'는 말만 반복했다.



분명 워싱턴DC, 시카고 등지에서까지 찾아오는 모임이라 들었는데 뭔가 급작스럽고, 은밀한 냄새가 났다. 〔〈【최근 언론과 법조계의 집중비판을 받고 있는 메이어 브라운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불을 끄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 후, 모임에 참석한 한 변호사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굉장히 조심스런 말투로 "행사 주최는 메이어 브라운이었고, 꽤 길게 유감을 표명했다"며 "이번 소송 건으로 상처를 입은 모든 이에게 고통을 준 것 같다면서 '사과(apologize)'란 단어를 썼다"고 말했다. 기사는 당일 간략히 "글렌데일 소녀상 철거 소송의 원고측 변론을 맡았다가 중단한 메이어 브라운이 한인사회에 유감의 뜻을 전했다"는 식으로 나왔다. 하지만 기분상 깔끔하게 떨어지는 구석은 한 군데도 없었다.

지난 2월20일, 리틀도쿄 더블트리호텔에서 '역사의 진실을 추구하는 글로벌 연합(GAHT)' 관계자들과 함께한 메이어 브라운 소속 변호사 3명은 '승소'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었다. 그들은 확신에 찬 눈빛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처럼 복잡했던 터키-아르메니아 역사문제 소송을 맡은 적이 있다"며 "이 문제는 한.일 양국이 논의해서 풀 정치적 이슈"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이제와 비공개 사과를 하다니 전 고객에 대한 직업윤리 차원에서도, 사과할 대상에 대해서도 맞지 않는 일이다.

이번 사과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시기'였다. 알다시피 글렌데일 소녀상 철거 소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LA연방지방법원은 글렌데일시와 GAHT에 "구두변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때 지시할 것"이라며 양측 입장을 검토중이다. 이 일은 마치 끝난 일처럼 옛 이야기하듯 꺼낼 사안이 아니다. 또 꼭 사과를 해야했다면 변호사들의 비공개 모임에서 끝내서는 안 된다.

오랫동안 일본군 성노예 피해역사 알리기 활동을 해온 관계자들이 말해온 건 '진심'이었다. 지금 생존한 피해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도 일본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다. 이 은밀한 사과로 진심을 운운하기엔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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