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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앞에서 찾은 답 "내가 널 용서했잖니…" 고 손양원 목사의 양손자 안경선 목사를 만나다

[LA중앙일보] 발행 2014/06/03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4/06/02 16:10

"나와 아버지를 살린 것은 사랑, 지금의 나는 할아버지의 열매
오늘날 시대 진정한 융합 필요해, 사랑과 용서…그건 복음의 본질"

그에게 아버지는 '사람을 죽인 자'였다.

한참 후에 알게 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안경선(54·사진) 씨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힘든 사실이었다. 안씨의 아버지는 지난 1948년 여순반란사건 당시 손양원 목사(1902~1950)의 두 아들을 친미, 예수쟁이란 이유로 죽인 안재선 씨다. 당시 손양원 목사는 아픔과 슬픔을 '용서'로 덮기로 했다. 도리어 아들을 죽인 그 청년을 평생 양아들로 삼아 품기로 했다. '안재선'은 그렇게 손 목사의 아들 '손재선'이 됐다.

하지만 안경선씨에게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멍에였다. 계속 되물었다. "왜 하필 나일까. 난 왜 살인자의 아들이 돼야 하는가…".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정체성은 혼란스러웠고, 질문의 무게는 갈수록 버거웠다. 감추고 싶었다.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바라볼지 두려웠다. 결국 끝없이 울분으로 토해내는 질문에 답을 준 건 '예수'였다.

그는 지금 목사가 됐다.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에서 사역하며 할아버지인 고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와 예수의 정신을 세상에 전하고 있다. 간증 집회차 LA를 방문한 안 목사를 지난달 23일 만났다. 그의 '가족사'와 손양원 목사의 이야기는 분열과 갈등의 시대 속에 큰 울림이다.

용서는 예수의 사랑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언제 알았나.

"내가 고3 때다. 아버지가 소천하신 1979년 12월이다. 그때 한 남성이 장례식에 찾아와 '사랑의 원자탄'이란 책 한 권을 주고 갔다. 거기에 '너의 가족사가 나오니 읽어보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손양원 목사님의 막내아들 이었다. 그때 책을 보는데 아버님 이름 석자(안재선)가 나오더라. 그때부터 답이 없는 질문이 계속됐다."

-무엇에 대한 질문인가.

"손양원 목사님은 모든 기독교인이 알고 존경하는 분이었다. 그런 존재를 가해한 사람의 아들이 '나'란 현실이었다. 왜 하필 '나' 일까. 게다가 당시만 해도 우리 세대는 반공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런 인식 속에 '내 아버지'는 살인자였다."

-왜 목사가 됐나.

"아버님은 목회는 안 하셨지만 신학 공부를 하셨다. 대신 '주의 종이 되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본인 인생의 우여곡절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그때부터 소명 때문인지, 유언 때문인지 많이 고민했다. 거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알게 된 가족사로 너무 괴로웠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결국, 답은 '죽음'을 통해 얻었다."

-어떤 죽음인가.

"나는 폐 한쪽이 없다. 당시 육체까지 각종 병으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그때 병실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건 육체를 넘어 존재에 대한 죽음이었다. 죽음의 끝자락에서 만난 하나님은 나에게 속삭였다.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 해도 나는 네 아버지를 십자가의 은혜로 용서했다고…, 다른 사람이 너를 다 욕해도 넌 내가 십자가에서 피 값으로 산 아들이라고…그 음성이 날 살렸다."

용서의 열매는 회복

-회복은 완전했나.

"회복의 시작이었다. 물론 자격지심은 있었다. 신앙적으로는 예수님의 자녀라 분명 말할 순 있지만, '손양원의 양손자란 말이 정말 성립이 되는 걸까…'를 생각했을 땐 세상이 우리 가족사를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 두려운 건 있었다."

-세상의 시선은 달랐을 텐데.

"당시 사회적 인식은 '공산주의'로 한번 낙인찍히면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었다. 나중에 들어 알았지만 아버님은 길거리에서 집단 구타도 여러 번 당하셨다고 한다. 내가 목회를 할 땐 어떤 분이 내 앞으로 내용증명 편지를 보내 공산당 지령을 받아 교회를 운영한다고 몰아세운 적도 있었다. 어쩌면 우리 나라만의 아픔이 그런 식으로 드러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감내하게 했을까.

"아버님은 법과 사회가 자신을 용서하지 않았지만, 손 목사님이 자기를 용서하니까 참사랑 앞에서 진정으로 뉘우치셨던 것 같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어려운 삶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이 받은 '사랑과 용서' 때문이지 않았을까. 예수의 사랑과 손 목사님의 용서의 열매가 맺혀진 것 아닐까."

인내가 필요한 용서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와 닮았다.

"글쎄…솔직히 누가 내 아들을 그렇게 죽였다면 어떤 식으로든 용서는 할 수 있겠지만, 아들을 삼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예수의 사랑은 전적인 은혜다. 그분은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죄인을 자녀 삼기 위해 오셨다. 게다가 예수가 찾아간 사람은 모두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동고동락하며 복음을 전하셨으니…우리가 복음을 안다는 것은…그 길은 숙명과 같다."

-용서는 무엇인가.

"용서는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걸로 알았는데 '한 순간'이 아니더라. 용서에는 긴 인내가 필요하다. 손 목사님도 분명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로워 몸부림치셨을 것이다. 손 목사님의 사모님도 자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나도 한때 그런 일을 한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다. 울분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께 기도할 때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을 용서해줘 감사하다'고 하지 않나. 그 고백을 끝내 실천해내는 게 사랑과 용서의 위대함이다. 용서의 열매는 오래간다."

-사실 쉽지 않은 게 용서다.

"한 예로 이번 세월호 사건을 보며 가슴이 많이 아팠다. 용서 이전엔 먼저 죄에 대한 철저한 뉘우침 아니면 최소한 양심의 가책이라도 있어야 한다. 억울하게 죽은 그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다면 잘못한 것에 대해선 사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죽음보다 강한 게 예수의 사랑인데 결국 용서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나. 복음도 죄인임을 깨닫고 회심할 때 복음이다."

-최근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발언이 문제가 됐는데.

"한국교회는 '높이'로는 성장했지만, 낮은 자세로 '깊이' 있는 성장이 필요한 시점 같다. 예전엔 교회가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지탄의 대상이 된 것을 모두 고민해 봐야 한다.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본질이 뭘까. 예수가 누구고, 왜 십자가를 졌을까. 이제는 교회가 십자가를 져야 할 때다."

융합이 필요한 시대

-본인의 목회는 어떤가.

"(웃음) 정신 차린 지 얼마 안됐다. 첨에는 손양원 목사님 같은 목회자가 되겠다 마음먹었지만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며 한참 교계 돌아가는 걸 보니, 현실은 다르더라. 조금씩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눈에 들어왔고 소위 '스타'가 되겠다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부단히 노력한 적도 있다. 그러나 손양원 목사님이 계시던 애양원에서 기도하며 마음을 다 잡았다."

-왜 '손양원' 인가.

"요즘은 '융합'이 너무나 필요한 시대다. 그건 사랑과 용서로 가능하다. 그건 십자가 복음에 담겨있는 본질적인 메시지다. 용서 뒤엔 하나님의 섭리가 있지 않나. 성경의 핵심을 그대로 실천하며 사셨던 손양원 목사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이 시대에 전하려는 무언의 메시지가 분명 있다."

-만약 할아버지가 앞에 있다면.

"일단 '가장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싶다. 손 목사님은 내 마음속에 '영원한 할아버지' 아닌가. 목회자로 따라야 할 롤모델이자 멘토다."

글=장열 기자

사진=백종춘 기자

rya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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