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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특별 배려'=='최대 차별'

[LA중앙일보] 발행 2003/12/13 미주판 25면 기사입력 2003/12/12 18:41

이종호 뉴욕중앙일보 편집부장

얼마 전 올랜도 디즈니 월드로 여행을 갔었다. 거기서 우선 놀란 것은 어마어마한 규모와 시설이었지만 또 한가지 더 놀란 게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구경 나온 장애인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 그것이다. 마찬가지로 휠체어에 몸을 의탁한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젊은이들과 함께 구경하고 즐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곳엔 장애인들도 똑같이 놀이 시설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모든 시설물에 별도의 장치나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직원들이나 다른 관광객들도 한결같이 장애인들을 우선 배려하고 안내해 주었다. 심지어 어떤 공연장에서는 단 한 명의 청각장애자를 위해 2명의 직원이 나와 수화 통역을 해주기도 했다. 이런 현장을 직접 보면서 왜 미국을 장애인의 천국이라고 하는 지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학자들에 따르면 어떤 나라든지 국민의 7∼8%는 영구적인 신체 장애인이라고 한다. 여기에다 5∼7%에 해당하는 정신 질환자 및 정신지체인까지 포함하면 국민의 15% 정도는 어떤 형태로든 장애를 가지고 산다고 한다.

미국인구 20%가 장애인

이들 장애인들은 사회적 편견과 불리한 환경 등으로 인해 사회 적응에 남다른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후진 사회일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하다. 미국이 선진국인 이유는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다른 나라 사람들로서는 믿기지 않을 만큼 치밀하고 철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미국의 건물이나 공공시설은 장애인 편의 시설이 갖춰지지 않으면 아예 허가가 나지 않는다. 어디를 가나 파란 선의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이 있고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다. 화장실도 장애인 전용 칸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인구의 20%가 넘는 5천5백만명 정도가 장애인이라고 하는데 이들과 더불어 살기 위한 사회적 장치가 그만큼 잘 갖춰져 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것도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1983년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결성된 ADAPT(American Disabled For Accessible Public Transit)라는 장애인 단체는 버스 리프트 설치 등 장애인의 대중교통 접근권 확보를 위한 캠페인을 수년간 주도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장애인들이 버스들을 막고 시위를 하다 투옥되는 고초를 겪었다. 장애인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꿨다는 ‘장애인법’도 의회나 정부가 아니라 장애인들이 먼저 나서서 만들었다. 장애인들이 지금의 위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이런 눈물겨운 사회적 설득과 투쟁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미국을‘장애인 천국’이라 하는 것은 단순히 장애인들이 살기에 편한 사회라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의지와 능력만 뒷받침 된다면 장애인이라도 무슨 일이든지 차별받지 않고 해 낼 수 있다는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사회라는 말이다.

편한 삶 만큼 소망 중요

그러나 장애인을 위한 각종 시설과 복지정책도 어떻게 보면 미국 특유의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의 소산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장애인을 배려한 수많은 시설과 제도가 어떤 때는 장애인이라 하더라도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도록 하고, 무슨 일을 어떻게 하더라도 나와 직접 관계가 없으면 처음부터 관여하지 않겠다는 무관심 내지 불간섭주의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90세가 넘어 보이는 노인이 혼자서 차를 몰아 수퍼마켓을 다니는 것을 볼 때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를 하는 장애인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시험에 붙고 난 뒤 이런 말을 했었다. 성공에 이르는 길은 누구에게나 고되고 힘이 든다. 다만 장애인은 남들보다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장애인들의 노력은 보지 않고 장애 자체만 보려 하기 때문에 더 힘이 든다는 것이다.

“장애인을 특별히 배려하는 건 더 큰 차별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의 자질과 능력에 따라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뿐입니다”

시혜 위주의 장애인 복지 개념이 완전히 바뀌어야 이 땅에 진정한 ‘장애인 천국’이 실현될 것이라는 10여년 전 친구의 말이 지금 미국에서도 여전히 설득력 있게 다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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