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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신의 설계도

[LA중앙일보] 발행 2003/12/18 미주판 25면 기사입력 2003/12/17 16:41

이기준 시카고중앙일보 논설위원

미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제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1743∼1826). 그는 재임시절 흑인 노예 셀리 헤밍스와 사이에 2명의 사생아를 낳았다. 이는 무려 2백여년이 지난 98년에야 사실로 밝혀졌다.

제퍼슨 후손들은 끊임없이 이를 부정해왔지만 제퍼슨과 헤밍스 가계의 DNA 검사결과 사실로 입증된 것이다.

모니카 르윈스키와 성추문으로 지난 98년 탄핵위기까지 몰렸던 빌 클린턴 대통령. 르윈스키의 드레스에 묻은 것은 클린턴의 정액이 분명하다는 사실 역시 DNA 검사결과였다.

반면 지난 99년 자신의 13살짜리 혼혈아 아버지는 클린턴이라는 흑인여성 보비 윌리엄스의 주장은 DNA 검사결과 거짓으로 드러났다.

DNA(디옥시리보핵산)란 세포조직의 염색체 속에 있는 유전정보를 가진 물질이다. 인간의 DNA는 뉴클레오티드라는 두 가닥의 사슬이 서로 꼬여 있는 이중나선 형태다.

길이는 약 2m 쯤으로 여기 붙어 있는 4종류의 화학물질 즉 염기는 무려 30억개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생명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요소다.

이들의 조합으로 인종·성별·피부·모발·체형·성격·지능 등 온갖 서로 다른 개체들이 탄생한다. 부모의 형질이 자손에게 유전되는 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신이 만든 인체조직의 설계도라고나 할까.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친자등 혈육이나 본인의 신원확인을 위해 A·B·O식 혈액형이 주로 쓰였다.

그러나 혈액형은 유전학적으로 출현 혈액형이 단순한 데다 동일한 혈액형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것이 큰 단점이다.

한편 DNA는 복제하지 않는 이상 자연상태에서 똑같은 DNA를 가진 개체가 탄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손가락의 지문(指紋)이 개개인 모두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DNA 감식을 유전자 지문감식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DNA의 염기배열은 동일한 가계의 경우 일정한 패턴을 이룬다. 바람피우다 낳은 자식이 아무리 제 자식 아니라고 우기다가도 꼼짝없이 들통나는 것도 모두 DNA 덕분이다.

DNA는 생체 세포 뿐 아니라 모발·타액·혈액·정액·치아 혹은 뼈 등 모든 조직에서 추출된다. 머리카락 반 올만 있어도 신원확인율이 99.9%에 이를 정도다. 혈액은 볼펜 심만한 자국만 있어도 분석이 가능하다.

수천년 된 이집트 미이라, 수십년 땅 속에서 부패한 뼈조직에서도 DNA를 분석할만치 테크닉이 발달했다.

현재 세계 최고의 뉴스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체포소식이다. 그가 진품( )인지 확인하기 위해 DNA검사까지 마쳤다고 한다. 집권 당시부터 암살자들을 속이기 위해 가짜를 많이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동안 후세인은 자신과 꼭 닮은 인물을 5명쯤 이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7월22일 그의 장남 우다이(39)와 차남 쿠사이(36)가 미군에 의해 사살, 가계 DNA샘플은 이미 충분히 확보된 상태다. 미국에게 후세인의 체포는 가뭄 끝의 단비만큼 반가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 TV화면에 비친 그의 비참하고 초라한 모습에서 무언가 몹시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가 없다.

깊이 2m 밖에 안되는 촌구석의 시궁창 같은 땅굴에서 두더쥐처럼 숨어 있던 그의 몰골에서 일국의 대통령 체면 같은 것을 어찌 상상할 수 있으랴.

흐리멍텅하고 퀭한 두 눈에 굵게 패인 주름, 헝클어진 머리칼과 찌든 얼굴 가득히 덮인 지저분한 수염은 영낙없이 상거지 꼴이었다. 게다가 별로 공손치 못한 점령군의 손놀림에 구강과 치아는 물론 머리카락 검사까지 당하는 치욕이라니.

이게 과연 한 때 중동을 호령하던 맹주의 모습이었던가. 이 역시 그의 일생을 미리 설계해놓은 신의 설계도중 한 장면일까.

후세인이 그런 꼴로 체포된 사실에 차라리 서글픔을 느낀다면

이미 두 아들과 손자 1명까지 사살당한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구차하게라도 목숨을 부지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수십만명의 자국 민족을 살해한 당사자가 자기 목숨은 그렇게 애착이 큰가 보다. 그런 몰골로 체포되기보다 차라리 자수, 아니면 장렬한 최후를 선택하는 것이 옳았다고 생각한다면 필자만의 편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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