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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월드컵 가는 내 친구 '하대성'

[LA중앙일보] 발행 2014/06/10 미주판 22면 기사입력 2014/06/09 20:42

오 세 진/사회부 기자

순식간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연장전 결승골 허용. 부평중 하대성의 헤딩골로 우리팀 안양중학교의 경기도 대회 우승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그를 전담 마크 하다 한 순간에 놓친 내 실수가 패배의 원인이었다. 그라운드에 엎드려 한동안 일어나질 못했다. 동료들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서였다. 이때 대성이가 다가왔다. 대성이는 "선수 아니냐. 질 때도 있는 거지. 다음에는 네가 꼭 넣고 이겨라"라며 자리를 떴다.

1998년 3월 축구 선수로 뛰던 중학 시절. 현재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된 하대성 선수와 얽힌 얘기다.

작은 키에 발 재간이 탁월했던 하대성은 좀처럼 막을 수가 없었다. 빠른 스피드로 우리팀 중원을 파고들었고, 절묘한 슛으로 골을 넣었다.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 감독은 그해 축구 꿈나무에게 주는 '차범근 축구상'을 하대성에게 줬다.

승승장구할 것 같던 하대성의 선수 생활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자라지 않은 키 때문이었다. 팀 전술 운영 능력과 개인 기술은 전국 최고 수준이었지만, 왜소한 신체 때문에 몸싸움에서 밀렸다. 그러다 2학년 때 20센티미터 이상 훌쩍 자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성장통으로 오랫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함께 뛰던 부평고에는 이근호와 김승용이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며 일찌감치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하대성은 눈길을 끌지 못하고 대학 진학에도 실패했다.

하대성은 또 말했다. "나는 선수 아니냐. 축구 선수. 이 정도 시련쯤은 이겨내야 진짜 선수되는 거다."

간신히 프로 선수가 된 이후에도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그러다 묵묵히 실력을 키우던 그에게 기회가 왔다. 고교시절부터 절친한 동료 이근호와 2006년 대구 FC의 돌풍을 이끌었고, 이를 계기로 2010년 한국 최고의 클럽 중 하나인 FC서울로 이적했다.

이전과는 달랐다. 하대성은 리그 우승과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거머쥐며 K리그 최고의 미드필더로 주목 받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꿈을 이뤘다. 홍명보 감독은 2013년 동아시안컵에서 대성이에게 주장 완장을 맡기며 그를 시험했다. 결국 하대성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29세 나이로 봐서는 마지막 월드컵일 듯하다.

얼마 전 꿈을 이룬 소감을 물었다. "말 했잖아. 프로 아니냐. 프로 정신으로 버틴 것 뿐이다."

프로정신. 당신은 얼마나 프로 정신을 발휘하고 있는가. 기자 역시 매일 반복되는 일과에 '나는 프로'란 의식이 있었나 되돌아봤다. 부끄러웠다. 주말에 난 자살 사건 취재를 그저 '죽을 맛'이라고만 여기며 푸념을 늘어놓던 참이었다. 모든 직업이 그렇다. 쉽게 풀리기만 하는 일은 없다. 어려움과 실패를 프로 의식을 갖고 견딘 사람만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자격을 얻는다.

브라질 월드컵이 2일 앞으로 다가왔다. 친구는 태극 마크를 달고 그라운드에 나서고, 기자는 수첩을 들고 현장에 나선다. 열심히 땀 흘리는 모습은 같다. 우리 모두 프로로서 자부심을 가질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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