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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포커스] 카우보이 나라의 '불치병'

정신 이상자의 총격에 대학생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슬픔에 북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 운동과 책읽기를 좋아했던 아들, 유럽 여행을 함께 해 추억을 만들었던 아들, 교환학생으로 영국 유학을 준비중이었던 사랑스러운 아들….

지난 달 발생한 샌타바버러 총격사건의 희생자 6명 가운데 한명인 크리스토퍼 마티네즈의 아버지 리처드 마티네즈는 아들을 그렇게 기억했다. 크리스토퍼는 그의 유일한 자녀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강했다. 가해자는 물론 가해자의 가족들에게까지 원망을 퍼부을 법도 한데 그는 달랐다. '지옥에 있는 것 같다'고 자책하는 가해자의 부모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만나고 싶다고. "나도 아들을 잃었지만 그도 아들을 잃었다." 두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무엇인가 의미있는 일을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물론 그가 말한 '의미있는 일'이란 총기소지 규제 강화에 관한 일이다. 또 다른 희생자, 어이없게 자녀를 잃는 또 다른 부모의 슬픔을 막고 싶다는 소망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그 후에도 총격사건은 잇따랐고 무고한 죽음의 행렬은 이어졌다. 포틀랜드에서 시애틀에서, 그리고 라스베이거스와 피닉스에서도 총격사건이 발생했다. 학교,식당, 쇼핑센터, 심지어 성당까지 장소도 가리지 않았다. 백인 우월주의자의 치기, 반사회 성향의 정신 이상자들이 벌인 명분도 이유도 없는 행동이었다. 희생자 대부분은 가해자와 일면식도 없는 관계였다.

카우보이의 나라답게 미국에는 총이 넘쳐난다. 주류마약총기단속국의 추산에 따르면 2013년 현재 미국의 총기 보유량은 3억정. 이처럼 추산치만 있는 것은 전국 차원의 집계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튼 미국 전체 인구가 3억1500만명 정도니 남녀노소 불문하고 거의 인구 1인당 총 한자루씩은 갖고 있는 셈이다. 전국총기협회(NRA)의 발표는 더 충격적이다.

총기가 매년 1000만 정씩 늘고 있다고 한다. 총기가 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총격사건의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의미다.

사태가 이런 지경에 이르자 대통령까지 나서 "지구상에 이런 선진국은 없다"며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지만 그뿐이다. 정치권 어디서도 대책 마련에 발벗고 나서는 곳이 없다.

개인 총기 소유의 원천 금지는 불가능하더라도 최소한 '위험인물'의 접근 차단 장치 정도는 마련해야 하지만 묵묵부답이다. 그렇다고 정치권의 무책임을 질타하는 여론이 비등한 것도 아니다. 전국총기협회의 강력한 로비를 탓하지만 사실은 국민들 스스로가 점차 비극에 무뎌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총기 소지 자유의 찬.반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증상은 있는데 뚜렷한 치료법을 내놓지 못하는 '미국병'을 지적하고 싶다. 미국은 총기 문제 외에도 다양한 병을 갖고 있다.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50% 이상을 가져가는 심각한 빈부격차에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인종문제까지.

누구나 위험성을 경고하지만 정부든 정치권이든 앞장서 내놓는 대책은 없다. 그럼에도 미국이 전진하는 것은 아직도 건강한 국민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시민사회의 자가 치유력이 일천한 역사의 미국을 세계 초강대국의 반열에 올려 놓은 것이다. 졸지에 아들을 잃었지만 상심과 낙담, 비난 대신 이를 계기로 부조리에 맞서려는 리처드 마티네즈도 그중 한명이다.

미국을 시스템의 사회라고 하지만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도 결국 사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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