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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의 클래식TALK]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바야흐로 4년마다 세계인을 축구의 열풍으로 몰아 넣는 월드컵 시즌이다. 평소에는 스포츠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도 이 시기만 되면 평범하기 그지 없던 도로시가 친구들과 함께 오즈의 나라를 여행하며 다니는 것처럼 마법에 걸린 듯 축구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러시아와의 예선 첫 경기가 열리기 직전, 지금은 해설가로 변신한 2002년 월드컵 당시 활약했던 이영표 선수가 이번 월드컵에 처녀 출전하는 후배 선수들에게 했던 조언이 생각난다. 축구 선수로서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된다는 것 자체가 한 개인에게 있어서 영광스러운 일임과 동시에 나라의 대표 자격을 위임 받아 출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부담감과 책임을 느꼈다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했다.

아무리 유럽 명문 구단에서 활약하는 유명 선수라고 하더라도 전 세계인의 잔치인 월드컵에 비교할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이런 부담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한 훈련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인 이야기는 더 인상적이다. 월드컵에서 여러 경기를 하는 동안 감내했던 부담과 사명감 때문에 정작 최고의 무대를 마음껏 즐기지를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올림픽에서 자신의 기량을 유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 모든 운동 선수들의 꿈이 되듯이 축구 선수들에게 있어서는 월드컵에서 좋은 경기를 펼치는 것이 어쩌면 선수로서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이자 최고의 순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축구뿐이겠는가? 지난 몇 년 동안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들도 무대를 무대 삼아 즐기고 자신을 내던지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고 말한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이영표 선수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벨기에에서 열리는 퀸 엘리자베스 콩쿨은 가장 전통있고 저명한 콩쿨 중 하나로 손꼽힌다. 지난 75년 동안 이 대회를 통해 국제무대에 데뷔한 음악가들은 이름만으로도 그 권위를 설명해준다. 벨기에의 엘리자베스 본 비텔스바흐 왕비의 이름을 딴 이 콩쿨은 차이콥스키 콩쿨, 그리고 쇼팽 콩쿨과 더불어 가장 권위 있는 대회로 손꼽힌다. 최근 2~3년 동안 바이올린과 성악, 그리고 작곡 부문에서 한국인 출신 음악가들이 최고상에 입상하는 활약을 보여왔다.

대개 이런 저명한 국제 콩쿨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대가들이 심사위원단에 포진한다. 외국에서 오는 경연 참가자들을 위해 항공료, 숙박비 제공은 기본이고 최고 5만 달러까지 상금을 제공하는 대회도 있다. 입상자에게 CD를 출반해주고 일정 기간 동안 연주회를 열어줄 뿐만 아니라 전문 매니지먼트 시스템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젋은 음악가들에게 콩쿨 입상만큼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자리매김 하는 길은 드물다. 이는 월드컵에서의 한 골이 유럽 무대 진출의 교두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평소 잘 넘던 재주도 돗자리만 깔아 놓으면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하는 천성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입시 수석 입학은 따 놓은 당상이라 했던 지인은 똑같은 도전을 3년 동안이나 반복했어야 했고, 이번에는 틀림 없다고 했던 콩쿨에서 죽 쑤고 돌아온 사람 중에는 평소 실력 절반만 해도 1등을 하고도 남을 내공과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평소에 아무리 훌륭한 기량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작 무대에서 실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결과는 냉혹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큰 무대에 선다는 부담을 견딜 수 없다고 해서 연주회를 포기하는 것은 역량있는 음악가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가대표라는 중차대한 책임의식 때문에 월드컵이라는, 선수 인생 최고의 순간을 긴장의 연속으로만 보낼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오즈의 나라를 여행하던 도로시가 헨리 아저씨와 엠 아주머니가 기다리는 캔사스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많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갖가지 위험을 이겨내고 마녀를 없앨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새로운 나라에서의 삶을 즐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에메랄드시의 왕위에 오른 허수아비, 윙키의 나라를 통치하게 된 양철 나무꾼, 그리고 숲 속의 왕이 된 겁쟁이 사자는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 지금 오즈의 나라를 여행 중인 23명의 태극 전사들에게 바라는 한 가지가 있다면, 자신을 증명해 나가는 이 과정을 즐겼으면 좋겠다. 공자의 이야기처럼 천재는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으니 말이다.

김동민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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