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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그대, 이미 부처이다

박재욱(나란다 불교센터 법사)

르네상스시대 조각의 거장 미켈란젤로는 "조각이란 돌 속에 이미 들어있는 형상을 해방시키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돌 속에 갇혀있는 어떤 형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몰입삼매의 작업을 통해, 오히려 자기해방의 열락을 도모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에게 조각이란 돌 속에 갇힌 형상의 해방은 물론, 온갖 세속적인 가치와 이기적인 욕망으로 고뇌에 갇힌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일종의 종교적 의식이었던 셈이다.

그 견고한 돌 속에 갇힌 영혼을 부처의 청정한 성품인 불성이라 해도 되겠다. 불성은 언젠가 아름답게 꽃 피울 꽃씨 하나 간직한 순일 무구한 마음속의 여백 아닌 여백이며, 실체 없는 무형의 형상으로, 어느 때고 돌아 가야할 우리의 본래 면목을 일컫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영원한 생명의 불꽃이며 본래 광명인 그 불성은 무시 이래 진리에 대한 무지와 그로 말미암은 번뇌와 미혹의 돌로 속박되어 있다.



깨달음이라는 그 아득한 소식을 위한 수행은, 단지 오염된 마음의 속박으로부터 불성을 해방시키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구도자들은 깨달음이란 주술에 걸린 나머지, 지혜의 나침반을 오독하여 길 위에서 길을 물으며, 남의 소를 열심히 세어가면서 끝없는 길을 꾸역꾸역 걷고는 한다.

앞서 그 길을 걸었던, 이제는 돌아와 본래의 꽃자리에 앉은 선지식들은 그런 제자들을 보며, 예외 없이 "비밀은 이미 너에게 있다"고 했다.

"산등성이 넘고 보면 구름이 또 앞을 가려/ 기진맥진 허기져서 흐물흐물 헤매다가/ 발길 꺾어 돌아서서 집으로 와 보니/ 꽃 피고 새우는 봄 여기 있었네".

그런데도 눈치가 굼뜨거나 느직한 제자에게는 "앞산의 저 딱따구리는 생나무도 잘 뚫는데 우리 집 저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라며 탄식하기도 했다.

결국 깨달음이란 무엇의 획득이 아니라, 오랜 세월 자기 안에 갇혀 있던 불성을 발견하는 체험이다. 이미 있는 것, 완성되어 갖추어진 것의 자기 확인인 셈이다. 해서 깨달음이란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대는 벌써 부처였다. 다만, 돌 속에 갇혀 있는 불성을 어떻게 해방시킬 것인가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같은 돌도 솜씨 좋은 석공을 만나면 부처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댓돌 밖에 되지 못한다.

그래서 혜능대사는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제자들에게 "자기 속에 있는 금강석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혜의 정과 불로 쪼고 제련하여 세상에 다시없는 부자가 되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해방의 길, 다시없는 부자가 되는 길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삶의 온갖 곤란과 신고는 이기적인 자기중심주의에 의한 '경계 지움'에서 비롯된다. 나란 나이외의 모든 너와의 관계 속에서만 나일 수 있다는 진리에 사무치면 그만이다. 예까지 왔다면 길은 끝났다. 그리하여 그 경계가 무너져 '따로 또 함께인 나'가 된 성자, 그분을 이름하여 부처라 한다.

musagus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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